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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Apr 05. 2020

엄마가 되는 순간, 우린 이미 망했다.

-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요즘 누가 결혼한다고 다 애를 낳아? 

    

결혼이 필수가 아니듯 ‘엄마 되기’도 필수는 아니다. 

선택지는 많다.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거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거나.      


결혼=출산이라는 공식이 깨진 지 이미 오래다. 

2019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출산율은 0.88명. 인구절벽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출산율만 봐도 그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출산이라는 상식적인 공식을 지켰다.

내 의지로, 확고한 신념으로 한 일은 분명 아니기 때문에 실은 지켰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촌스럽게도 나는, 결혼을 했으니 아이도 낳아야지 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임신을 했고, 임신기간 열 달을 채우고 아이를 낳았다. 


잘못 걸려들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옆에 갓 태어난 아기가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울고, 울었다. 

잠시 차렸던 정신을 다시 놓아버릴 지경이 되어서야 ‘아,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실감했다. 


엄마가 된 걸 인지했지만 삼십 년 넘게 ‘엄마’라는 이름은 부르기만 했지 들어 본 적은 없어서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울면 젖을 물리고, 또 울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래도 울면 안아주었다. 

이미 엄마가 된 선배맘들의 ‘엄마 껌딱지’ ‘등 센서 달린 아기’ 같은 말들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나는 초주검 상태가 되어 있었다.      


2012년 3월, 누가 뭐래도, 숨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으니 이제 어쩌지?     

     Mother Daughter Love - photo on Pixabay                                                        


임신을 한 10개월 동안 우리는 곧, ‘엄마’가 되겠구나, 하는 설렘으로 출산을 준비한다. 

출산 전 준비 용품 리스트를 다운 받아서 하나씩 줄을 쳐가며 사야 할 것, 빌려야 할 것, 중고로 구매할 것들을 꼼꼼하게 챙긴다. 가재 수건을 대량 구매해 세탁해두고, 아이 방을 만들고, 산후조리원을 골라둔다. 출산일이 임박해지면 누군가 올려놓은 출산 후기를 찾아 읽고 또 읽으면서 진통 간격은 어떻게 체크하는지, 출산 굴욕 3종 세트가 뭔지 미리 학습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아이를 맡길 것인지도 미리 결정해둔다.      


그런데 정작,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어떤 엄마가 될지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어차피 엄마가 될 테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그냥 ‘엄마’인데 뭐.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러다 보니 막상 아이가 태어난 뒤 닥친 현실 앞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육아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엄마가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 100일 전 후 ‘육아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면 집이라도 찾아가 그 비법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나 역시 어차피 ‘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를 되돌릴 수도 발을 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모든 게 계획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갈 리 없었다.    

  

백일의 기적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온몸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버린 듯한 느낌,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까칠함, 

남편인지 남의편인지 꼴 보기도 싫어지는 같이 사는 남자, 

두 시간만 방해 안 받고 편히 잘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수면부족이 이어지는 육아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정하자. 

‘엄마’가 되는 순간 이미 우리는 망했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육아’와 ‘엄마’가 제목에 들어가는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그림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어렴풋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였다.   

   

무엇이든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포기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망한 채로 살 것이냐,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것이냐, 그 선택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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