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툭, 사랑은 안될까?

- 김려령 <일주일>을 읽는 밤

by 목요일그녀
"남들은 다르게 살 것 같으냐? 부부의 연이 그렇게 지독한 거다."
부부가 뭔데 그토록 싫음에도 함께 살아야 합니까. 도대체 부부의 연이 뭔데 단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을 살라고 하십니까. 인간이 그토록 완벽한 존재입니까. 도연은 실패한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억지의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실패에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새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통념에 어긋났으므로 말하는 순간 얻는 것보다는 잃는 의미가 더 많았다.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다. 너무 아픈 눈물이었다. 더 살라고 하면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싫으냐? 싫어요. 헤어져라. 결혼하고 꼭 삼 년 만이었다.
- <일주일> 중에서, p92

그렇게 싫어지는 순간이 온다. 미치도록 싫어지는 순간이.

미치도록 좋아했던 순간만큼 강렬하게 온다. 다른 게 있다면 좋아했던 순간이 짧은 반면 싫어지는 순간은 시시때때로 아주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유명 작가 도연과 국회의원 유철.

낯선 나라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했던 일주일.

한국에 돌아와 다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만든 두 사람.


소설은 세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했다.

그 사이 덧붙여진 이야기들 사이를 마치 드라마를 보듯 쫓아다녔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가 떠올랐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만나는 장면.

영화와 소설이 다른 게 있다면 영화의 마지막이 해피엔딩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이었다면 소설 속 엔딩은 그냥 꽉 찬 해피엔딩 같았다는 것.


사랑이 하나일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으며, 어떤 통념에 기댈 수 없는 것이란 걸 인정한다면 애틋하고 다정한 연애소설로 읽힐 테고, 그럼에도 사랑이란 게 그리 쉽게 변하니. 이혼이란 게 그리 쉽니.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무시하니,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불안한, 위태로운 이야기로 읽히지 않을까.


게다가 늘 결혼과 이혼 사이에는 '나'와 '너'말고 '아이'가 존재하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자유였으나, 이별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다른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다른 가정의 가장이 된 '아빠'를 가진 '아이' 인영(도연의 딸)

마음이 불안정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유철의 아들)


물론 이 소설에서 둘의 관계가 아이들 때문에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자꾸 마음이 갔다.

(나는 이 소설을 어떤 형태의 연애소설 혹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로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실망으로 화가 나 있었고 그 속에는 깊은 절망도 들어 있었다. 왜 꼭 그래야만 했나. 왜 꼭 그런 사랑을 했어야 했나. 자식이 받는 상처보다 그깟 사랑이 먼저였나. 인영은 엄마가 인터넷으로 검색되지 않는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멋대로 아빠가 된 사람의 이름마저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다 다녔다.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하지. 날 위해서 그쯤은 해줄 수 있었잖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다 인정해버리면 나는 어떡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낳아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해? 인영은 자괴감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었고, 재미있던 것들과 좋았던 것들, 맛있던 것들이 다 쓰리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네 인생을 사는 거야.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서 네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못할 뿐이야. 괜찮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가슴에 심지처럼 든든하게 박혔던 사람이 빠져나갔는데,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고, 그런 일에 제일 먼저 기뻐하길 바란 사람이 빠져나갔는데 어떻게 괜찮나. 가족이라는 게 멋대로 살면서 상관하지 않고 각자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거였나. 어른들은 그래요? 부모가 누군지 제일 먼저 따지는 사람들이 어른들 아닌가요?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부모 때문에 손가락질받고 따돌림도 당한다고요. 그런데도 괜찮아요? 나는 하나도 안 괜찮아요.
- <일주일> 중에서, p259


도연의 딸 '인영'의 이야기가 소설보다 먼저, 조금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른들의 연애'라는 게 따로 있을까.

연애는 그냥 연애.

사랑은 그냥 사랑.

너무 가치를 두지 말고 가볍게 사랑. 왜 우린 그게 늘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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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저자 김려령 / 출판 창비 / 발매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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