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끄적거리는 걸 좋아한다. 일기도 일기장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게 좋다. 가계부도 편리한 앱이 많지만 종이에 직접 백 원 단위까지 직접 기록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니 SNS와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블로그를 꾸미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제공해 주는 템플릿을 활용해 디자인 같은 건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글만 계속 올렸다.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다 보니 꾸준하게 하나씩 쌓아 둔 기록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결국 그 공간이 나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많은 시간 동안 시간을 들여 적어둔 서평이, 짧은 글들이 나의 장점이 되고 자산이 되었다.
블로그 포스팅 2,793건, 최근 몇 년간 블로그에 올린 글의 개수다. 이 숫자가 블로그 지수를 높이거나, 유명해지게 하거나, 돈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자산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되어 주기도 했다.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브런치도 활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블로그를 통해 글을 가장 많이 올린다. 모임 모집과 진행 역시 블로그를 통해서만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가장 애정이 많은 공간이기도 하다.
2020년이 끝날 때 블로그에서 ‘2020 마이 블로그 키워드’라는 걸 알려줬다. 한 해 동안 내 블로그에 유입된 검색어 Top 3와 내가 작성한 글의 개수와 새로 만난 이웃의 수까지.
내 블로그 유입 검색어 Top 1은 <독서모임>이었다. 작성한 글의 개수는 314개, 새로 만난 이웃은 2,951명이었다. 그 기록은 내겐 기록 이상의 의미였다. ‘목요일 그녀’라는 부캐가 만들어낸 의미 있는 성과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 준 기록이었다.
2021년이 끝날 때 확인한 ‘2021 마이 블로그 리포트’에서는 한 해 동안 작성한 포스트가 369개였다. 그중 대부분이 서평과 모임의 기록들이었다.
자신의 콘텐츠를 찾기 위해서는 분명 그것을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 일기장에 쓰는 건 ‘나’만 안다. 아무리 잘 써도 봐 주는 사람이 없다. 일기장에 혼자 쓰는 것도 자신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무언가 시작해 보고 싶다면 온라인 속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채워나가면 좋겠다. 한두 달 내에 이웃을 늘리고, 방문자가 많아지고, 공간을 알리겠다는 목적보다 하나씩 자신의 것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물건을 고를 때 여러 사이트를 비교하다가 결국 가격, 서비스 등 내 마음에 드는 한 군데를 선택하게 된다. 똑같은 물건을 팔고 있어도 사이트가 주는 신뢰도, 이용자들의 후기, 상세한 소개 페이지 구성 같은 것들 마음을 끌게 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자신의 분위기로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콘텐츠가 모양을 갖추고 만들어질 거다.
나에게 블로그가 맞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맞는 플랫폼이 있을 거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시작 뒤에 블로그에 쓴 글을 수정해 각 SNS에 올리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시들해져서 지금은 같은 내용의 글을 여러 SNS에 올리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엔 일상 사진을 가끔 올리고, 브런치에는 주제를 정해 매거진으로 연재한다.
글을 길게 쓰지 않고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 편한 사람도 있고, 홍보나 마케팅보다는 기록에 중점을 둔다면 브런치를 추천한다. 요즘 브런치는 책을 출간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만약 책 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주제를 정해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
본인이 어느 플랫폼에 많이 접속하는지, 어느 공간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지, 어느 플랫폼에 올라온 글들을 흥미롭게 읽는지, 이웃 신청이 많이 되어 있는 공간은 어디인지 살피다 보면 자신에게 잘 맞는 플랫품을 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블로그 메뉴를 좀 정리하면 어때?”
어느 날 친한 지인이 말했다. “네 블로그에 좋은 콘텐츠가 많은데 조금 산만한 것 같아. 메뉴를 좀 줄이고 보여주고 싶은 걸 강조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기록에만 중점을 두었지 블로그라는 공간을 디자인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인의 말을 듣고 블로그를 살펴보니 메뉴바가 길게 늘어져 있고, 카테고리 나열도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늘 글쓰기 버튼을 눌러 글을 쓰고 발행 버튼만 누르다 보니 내 블로그를 객관화해서 보지 못했다.
최근에 블로그를 새로 꾸몄다. 홈페이지 타입으로 바꾸고 '독서'와 '글쓰기' '모임' 세 가지 카테고리를 중점으로 프롤로그 화면을 꾸몄다. 블로그 이름도 바꿨다. 스스로 고민해서 공간을 마음대로 디자인하고 나니 전보다 더 애정이 갔다.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니다. 경험을 해보니 알겠다. 내 눈엔 보이지 않아도 내 공간에 들어왔다 가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올린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이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처음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공지를 올렸을 때 한 달음에 달려와 주신 분들 모두 알게 모르게 내가 그동안 가꿔놓은 블로그라는 공간에 찾아오고 계셨던 분들이었다.
그 계기로 지금 인연들이 시작되었다. 여러 플랫폼에 살짝 발 담그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공간을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게 디자인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