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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Apr 29. 2024

전쟁의 흔적

피난민촌

작은 체구의 한 노인과 대여섯 살 여자아이가 성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쪽 찐 머리 머리에 인 작은 보따리 흰색에 가까운 옥색 한복의 한 노인, 멀리 보이는 무너진 성문, 먼지 일으키는 흙길, 길옆 키를 넘는 언덕, 언덕 위의 긴 성벽, 내리쬐는 햇볕... 등등이 걸어가면서 뒤에서 본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와 함께 외갓집에 가는 길이다.     


형제 중 유독 나만 할머니 집에 대한 기억이 있다. 두 살 많은 오빠는 항상 밖에서 놀았고 동생은 너무 어려서 엄마가 직접 돌봐야 했다. 엄마 손이 모자랄 때 나는 가끔 외갓집에 맡겨졌다. 외할머니가 오시면 나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가셨다.      


외갓집은 푸근했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모두 잘해 주셨다. 첫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고, 동생이 두 명이나 있으니 식구들 관심에서 멀리 있던 나는 외갓집이 좋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빈 화장품 병에 동전을 모아 주시기도 하고 절에 갈 때 데리고 가셨다. 이모가 머리 빗겨주는 손길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할머니댁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항상 외갓집이 가고 싶었다.     




노인과 여자아이 걸음으로 외갓집 가는 길을 쉽지 않았다. 성을 따라 흙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짐은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화서문에서 장안문까지 성의 안쪽으로 걷는 길이었다. 우리 집 근처의 성들은 멀쩡했는데 북문(장안문)은 거의 부서져 성 아래쪽만 남았고 주변 성벽도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이며 서 있었다.          


외갓집 가는 길의 클라이맥스는 작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작은 문이었지만 견고하고 웅장했다. 그 문이 수원화성의 북암문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도 오랫동안 이 문을 지나는 꿈을 꾸었다. 할머니댁 가는 길의 기억은 점점 과장되어 나중에는 문이 없어지고 좁은 벽과 벽 사이를 통과하기 위해 애쓰는 꿈을 꾸기도 했다. 


문을 지나면 이제까지 걸었던 길과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성벽은 문을 통과하기 전보다 몇 배나 높았고 컴컴했으며 큰 연못도 있었고 숲이 우거졌다. 성에서 암문의 기능은 성안의 사람들을 위해 식량이나 무기를 외부에서 반입할 때 적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작은 문이다. 이 문이 나의 기억 속에서 재 탄생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가는 마지막에는 항상 이 작은 문을 통과하는 꿈을 꾸었다.      


문을 통과하면 마을이 나왔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외갓집이다. 할머니네는 가는 길도 특별했지만 할머니가 사는 동네와 할머니 집은 더욱 특별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곳은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사는 피난민촌이었다. 계산해 보면 전쟁이 끝나고도 10여 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살았다.    


일제강점기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무역을 하셨다고 한다. 큰돈을 번 할아버지는 수원 시내 법원 옆에 큰 집에서 사셨다고 한다. 인민군이 법원을 폭격한다는 것이 그 옆 민간인 집을 폭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집이 없어졌다고 한다. 얼마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사셨다. 나는 그 집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상자를 붙여놓은 것처럼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대문이라고 할 것도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었다. 부엌의 바닥은 그냥 땅이었고 그 땅은 많이 밟아 만질만질했다. 부엌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이다. 방에서 다시 문을 열고 나가면 텃밭이 나오고 텃밭은 나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즉 한 집에 부엌 방 텃밭이 전부였다. 각 집에는 화장실도 없고 마을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연무동 하천 변에 터를 정비하고 부엌 딸린 방을 판자로 구분해서 집이 없는 피난민에게 한 집에 하나씩 나눠 주었던 것이다.  


햇살이 눈부셔 잠에서 깨면 할머니는 부엌에서 일을 하셨다. 방에는 할아버지만 앉아계셨다. 키가 크셨고 멋쟁이셨고 위엄이 있으셔서 어려웠다. 아직 자는 것처럼 이불속에서 미적거려도 할아버지는 내가 깨어있는 것을 다 알고 계셨다. 할아버지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이모는 너무 예뻤다. 이모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나에게도 발라주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집은 포근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는 따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할아버지는 새로 집을 지어 시내로 나오셨다. 이후 외갓집에 대한 기억은 마당 넓은 새집과 시집온 외숙모 새로 태어난 사촌 동생들로 북적였고 나의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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