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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May 06. 2024

우리는 중산층인가?

70년대 서울의 아파트

 

“중산층 아파트”     


우리 가족이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살았던 집이다. 이름보다 더 생소한 것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였다. 70년대 아버지는 여러 자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서울 생활의 첫 번째 집이 용산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당시에도 지방에서 살던 집을 팔아 서울에 집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으셨을 것이다. 부족한 돈을 빌리거나 아니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방법뿐이다. 은행 대출이 어려운 시절이어서 집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식구가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기는 더욱 어렵다고 판단하신 아버지가 해결 방법으로 아파트를 선택하셨을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당시 아파트는 주택보다 저렴했을 테니까....  


아버지의 결정은 탁월했다. 우선 아버지께서 근무하실 학교가 멀지 않았고 지식들의 교육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에 대한 적응은 쉽지 않았다. 

     



6층 아파트에 우리 집은 5층이었다. 이사 첫날 물이 나오지 않았다. 계단으로 짐을 나르던 일이나 물 양동이를 들고 오르내리며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잠을 자기 위해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웠을 때는 방바닥이 땅에서 떨어졌다는 생각에 몸이 마치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주택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주방과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부엌을 대신하는 주방이라는 공간이 생소했다. 부엌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는 마루 한편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서서 식사 준비를 하셨다.  아직 식탁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루로 불리던 공간은 거실로 바뀌었다. 연료를 무엇으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실에서 아직 석유난로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주방보다 더 생소했던 것은 화장실이었다. 한옥에서 변소는 마당 저편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변소에 가는 일은 큰일이었다. 관리도 쉽지 않았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퍼내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3D업종이라 그런지 똥을 푸는 사람들의 위세도 셌다.  


양옥으로 이사하면서 변소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세수나 목욕을 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졌다. 이때부터 변소는 화장실이라 불렀다. 변소가 밖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관리에 무척 신경이 쓰였던 거 같다. 이제까지 신문지나 다른 종이를 썼는데 화장실 휴지가 따로 나왔다. 단체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선생님은 화장실 청결에 대해 강조하셨다. 화장실 청소는 모두가 싫어하는 일이어서 숙제를 안 해오거나 말썽을 부렸을 때 벌로 시켰다.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화장실은 이제까지 보아오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앉아서 일을 보는 좌식변기가 설치된 것이다. 처음 보는 좌식변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식구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집에 오시는 친척 시골 어르신들은 화장실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하나씩 남기고 가셨다.                

     



아파트의 역사를 보면 일제강점기 이미 일제에 의해 지어진 5층 아파트가 있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가 1956년 중앙산업에 의해 세워진 중앙아파트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미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을 알고 있었다. 서울시는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려고 서민아파트를 건설하였다.


1970년 4월 18일 새벽 6시 30분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마포에 있는 지상 5층 15개 동 규모의 와우아파트는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시민아파트인데 준공 석 달만에 한 동이 폭삭 주저앉아 아래 판잣집을 덮은 사건이다. 와우아파트 붕괴는  서울 시장, 설계자, 현장감독, 건설회사까지 총체적인 문제가 낳은 비극이었다.


서민아파트 부실을 지우기 위해 서울시는 민간 주도로 튼튼하게 한강 변에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 아파트였다.  사회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어디 사니?”

“중산층 아파트에 살아요.”

“중산층? 그런 이름도 있어?”   

이 말을 들으면서도 우리 아파트 이름이 이상한지 몰랐다. 


잘 살아보겠다고 외치던 시절이었다. 산업화 수출 유류파동 새마을 운동 등 도시 농촌 할 거 없이 들떠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중산층이었다. 그 시절부터 아파트의 이름에는 시대의 욕망을 포함하고 있었다.     


요즘 아파트 이름을 보면 어렵다, 현란하다, 복잡하다를 넘어 가관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삼성 대림 등등 시공사명이 들어가고 forest hill 등등 영어명이 들어가고 summit 등 사회계층을 나타내는 많은 것을 이름에 넣어야 하니 이름이 길어져 부르기에 불편할 뿐 아니라 국적이나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그렇지만 이름에서 이 시대의 욕망을 알 수 있다.      



우리 서민들은 집 한 채 갖는 것이 꿈이다. 어느 건축가는 그 꿈을 실현하게 한 것이 아파트라고 한다. 좁은 땅에 도시화는 서민들의 주거환경을 더욱 퍽퍽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라는 주거형식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곧 중산층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 가족의 아파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서울 외곽에 주택을 한 채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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