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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May 20. 2024

아버지가 지은 집

2층 상가주택

 요양원에 계신 93세 엄마가 말씀하셨다.     


“할머니 한 명이 새로 들어왔는데, **대학 약대를 나왔다더라. 젊은 시절 약사였대. 

**할머니는 젊었을 때 수학선생님이었대. ”

“엄마 요양원에서도 학벌 자랑을 해요?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하셨어요?”

“난 돈을 벌어보지 못했다고 했어. 평생 한 일이 10 식구 밥 해먹인 일밖에 없다고 했어.”  

   

우리 엄마는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엄마가 세를 받는 건물주였던 시절이 있으셨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밤마다 종이에다 집을 그리셨다. 땅의 모양이 세모였는데 어떻게 집을 앉혀야 하는지 계속 그려 보셨다. 어느 정도 가름이 되어야 정식으로 설계를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거 같다.


      

아버지는 하천 변에 집을 짓기 거의 불가능한 땅을 사셨다. 땅의 크기와 모양은 좋지 않았지만 길가여서 위치가 좋았다. 옆에 흐르는 하천은 복개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천이 복개되기만 하면 옆의 자투리땅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곳에 집을 지으실 계획이셨다. 


    

아버지의 계획은 거의 실행되었다. 내가 고3이어서 집을 짓는 과정을 알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새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라고 학교를 마치면 그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새집에 오니 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이사를 마치셨다.       



땅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이 작게 보였는데 번듯한 2층 집이 지어져 있었다. 아래층은 상가였고 2층을 살림할 수 있도록 지어진 상가주택이었다. 세모난 땅 한쪽에 네모 집을 지었으니 나머지 땅은 다시 세모가 되었다.      

인근에는 학교가 있었고 우리 집은 학교 가는 길목이었다. 엄마 아버지는 아래 상가에 세를 주셨다. 한쪽은 문방구가 다른 한쪽은 세탁소가 들어왔다. 등교시간이면 길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문방구에 들렀다.      



엄마가 살림 이외에 할 일이 생기셨다. 문방구와 세탁소에 세를 받는 일이었다. 월말이면 수첩을 갖고 아래층에 내려가셔서 수도와 전기 계량기를 체크하시고 받을 돈을 계산하셨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장사가 잘 되는지 살림하기에도 불편이 없는지 신경을 쓰셨다. 아이들이 다 커서 심심했던 차였다.      



엄마의 수익은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도 식구들에게 고기반찬 한번 해줄 정도는 되었을까? 그저 엄마의 생기가 돌아와 조금은 젊어지셨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돈을 벌어 본 사람은 안다.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기존의 자산을 갖고 임대 수익을 얻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4~5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자산을 갖고 재산을 증식하는 방법으로 부동산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의 도시집중이 심하던 시절 집은 커다란 자산이었다. 기존의 집을 늘린다든지 새로 집을 지을 때도 세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다. 집 한 채에 두 가구 이상 사는 주거형태가 유행한 것이다. 이런 주거형태가 발전하여 다가구 주택이라든지 다세대 주택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집이 삶의 공간이던 시절이다.


아파트가 유행하고부터 집이 삶의 공간보다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아파트의 특징 중 하나가 집의 획일성이다. 모든 집의 구조와 모양이 대동소이하니 집에 가격을 정하기 쉬워졌다. 집에 가격을 매기게 되니 순위가 정해지기 시작했다. 비싼 아파트, 더 비싼 아파트.....


집을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삼각형의 땅에 아버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드디어 집을 지으셨다. 아래층은 상가였고 우리 가족은 위층에서 살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는 고무호스와 연장을 들고 분주하셨다. 엄마는 아래층 상가 주인들에게 월세를 받아 돈을 벌어 보셨다. 


그 집은 길가 집이어서 시끄러웠다. 서향이라 오후가 되면 거실에 해가 들어 일찍부터 커튼을 쳐야 했다. 2층 계단이 무릎이 시원치 않은 엄마에게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이 집에 살 때 엄마 아버지는 가츠 활기차셨다. 자식들 결혼을 시킨 집도 여기였다. 가족이 늘고 생활은 안정되었다.


아버지에게 삶의 자신감을 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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