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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un 04. 2023

보복과 팬덤의 정치, 극복 못하면 미래는 없다

노무현 트라우마(손병관, 메디치미디어, 2022)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충격이었다.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후로 4명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였다. 기대가 컸다. 노무현이 못 이룬 개혁과 적폐 청산을 이뤘으면 했고 성공적인 정부로 마무리하길 바랐다. 정권 연장도 당연한 것이라 꿈꿨다.


하지만 정권 연장에 실패했다. 국민은 냉정했고 개혁과 적폐 청산을 위해 들었던 칼은 이제 거꾸로 이전 정부를 부정하며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이 정녕 노무현이 바란 나라인가?"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하지만 정권 연장에 실패한 지금의 상황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질문은 이미 노무현 사후 14년 모든 시간에 걸쳐 계속 존재해 온 질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지못미'의 감정을 갖고 있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노무현의 반대편에 서 있던, 여전히 서 있는 사람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 정치의 전과 후를 가르는 선명한 경계였다. 그가 이루지 못한 정치적 숙제와 비참했던 조리돌림은, 물고 물리는 보복의 순환고리를 만들어 내며 정치판을 비극적 마당놀이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단두대만 없을 뿐, 대한민국은 노무현의 죽음 이후 프랑스의 길을 반복하고 있다."


한 현직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혁명기 프랑스가 그러했듯 대한민국의 정치는 권력을 쥔 집단이 그 이전에 권력을 쥔 집단을 사정없이 난타하고 대중의 눈앞에 마련한 처벌대 위에 올렸다. 때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검찰과 언론은 권력의 의도에 따라 칼춤을 추고 대중을 뒤흔들었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도 혼란스러운 지경에 와 버렸다. 극단적 대립이 낳은 보복과 팬덤의 정치는 내외부를 막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는 무조건 적으로 돌려가며 축출의 대상으로 삼아 버리는 일 역시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은 그 위태로운 현실을 교묘히 이용하는 몇몇 정치인과 집단일 뿐이다. 민생은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고 정쟁만 남은 이러한 정치가 국민들에게 이로울 리도 없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논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낳을 뿐인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해결책은 무엇인가.


사람이 바뀌면 될까? 체제가 바뀌면 될까? 적어도 노무현 트라우마가 지배해 온 지난 14년 동안을 보면 사람이 바뀌어도, 체계가 바뀌어도 좀처럼 해결이 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극복하고 넘어서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과거는 분명하게 털고 가야 한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수사기관을 앞세워 정적을 축출하고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으스대며 정의를 들먹이는 것은 보복과 팬덤의 정치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분명 노무현의 죽음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한국 현대 정치사의 비극이다. 하지만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지금의 모습이 정녕 그가 바란 나라인가 물었을 때, 지금의 모든 정치인과 정치집단은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로잡을 무수한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이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은 건 한 가지다. 지금의 정치를 포함해 이제는 극복하고 넘어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좌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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