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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Feb 21. 2019

해소되지 않는 '여성'이란 이름의 그 무거운 굴레

'너의 봄은 맛있니'를 읽고

- 여성으로 살아가기란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00년 전과 비교하면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많이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여성의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다시) 존중받게 된 것은 고작 1~2분 전부터였을 것이다. 더구나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묶일 수밖에 없는 굴레와 그 무거움은 여전하다.

이 책은 여성의 시각에서 그 굴레를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면에서, 일종의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8편의 단편마다 우리 사회 속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편견과 억압의 구조가 여전히 여성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매우 불편하고 답답하다.

저자는 특히 임신(출산)과 결혼(이혼)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러한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좌절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좌절은 일시적이고 파편적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결코 끝은 아님을 역설한다. 완전한 극복에는 다다르지 못했을지 몰라도 분명 성장하고 있음을, 최종적인 극복을 위한 여지가 아직 남아있음을 희망으로 남겨 놓는다.

우리는 소설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여전히 은연중에 억압이라는 굴레를 여성들에게 씌우고 순종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만약 독자가 여성이라면 스스로 그 굴레를 뒤집어쓴 채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굴레는 무겁고 수동적이다. 그걸 벗는 것이 바로 존엄과 주체성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 카프카의 '변신'과 카뮈의 '이방인'

소설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코드는 카프카의 '변신'과 카뮈의 '이방인'이다. 굴레에 갇힌 여성은 타자화된 객체로서 억눌려 있고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속 시원하게 스스로 존립해내지는 못해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는 고민과 자발적인 고립을 통해 역설적인 반등의 기회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분명 가능성은 엿보인다.

작가는 선인장이 돋는 여성의 이미지를 표지로 선택했다. 그리고 고백한다. 내 가슴속에서도 선인장이 자란다고. 평범함을 가장한 채 누르고 사는 그 선인장이 품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야말로 근본적 자아로서 내가 찾아야 할 지향점인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제각기 품고 있는 선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그래야 다른 누군가의 선인장도 안을 수 있을게다. 비단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고통의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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