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앙마 Jun 24. 2022

참. 참. 참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을 읽고

참(행복은) 참(쉬울 수도 있는데...) 참(어렵게 돌아간다... 우리...)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목수 일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허름한 구멍가게 하나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아버지의 결정에는 머리가 커갈수록 돈 들어갈 일이 많은 두 아들 녀석이라는 이유가 있었고, 어머니의 채근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결정은 이뤄졌고 후속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 인수 계약서에 아버지의 엄지손가락이 마침표를 찍었고 그렇게 '산곡동 구멍가게 아들'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집안 살림에 그리 큰 보탬이 된 것 같진 않다.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목수 일이 들어올 때마다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가게 일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새로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2년 정도만에 가게를 접은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열다섯 살, 수염이 자라기 시작하고 목소리가 굵어지던 질풍노도의 사춘기 한복판을 지나가던 '산곡동 구멍가게 아들'에게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고 가는 사람들, 오고 가는 대화들 그 하나하나가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고 있던 소년에게 '세상이란 이런 거야' 가르쳐 주는 듯했다.


구멍가게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든 없든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문을 열어야 했고 누군가는 항상 가게를 지켜야 했다. 지금이야 CCTV도 있고 알바도 쓸 수 있으니 어떻게든 돌아갔지만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가난한 동네, 이름 없는 구멍가게는 온전히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과는 달리 사람 사는 냄새가 있었다.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정을 함께 나누고 살았다.
옆집 아저씨, 앞집 아줌마한테 잠깐 가게를 맡아달라 부탁해도 아무 걱정할 게 없었고, 가끔 취중에 들어와 막무가내를 부려도 어차피 내일이면 쭈뼛거리는 얼굴로 찾아와 배시시 미안하다 사과할 줄 아는 상식이 있었다. 누구네 집 애가 뭘로 속을 썩이는지, 또 무슨 일로 자랑거리가 되었는지 오고 가기도 했고, 오늘 하루가 누구 때문에 더럽게 힘들었어도 화롯불에 노릇하게 구워낸 오징어 한 마리, 소주 한두 잔에 낄낄거리는 험담으로 함께 털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언제 머리가 클까 걱정스러웠던 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무렵, 세상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높이 올라간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없는 것이 없고 24시간 운영하는 깨끗한 편의점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 생겨났다. 꼬깃꼬깃한 지폐와 손때 묻고 코 묻은 동전 대신 말끔한 이미지의 신용카드 한 장으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계산을 치를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신 사람 사는 냄새도 함께 사라졌다. 편의와 편리가 차지한 공간에, 사람 사는 냄새까지 담아내기에는 무리였을까. 아니면 변해버린 세상에서 사람 사는 냄새까지 남겨두기에는 우리 마음에 여유 한 조각, 마음 한 조각 남아있지 않아서였을까. 그렇게 환하고 편리해진 편의점은 입도 없고 눈도 없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청파동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ALWAYS편의점은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폐점이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미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오십 보, 백 보 거리마다 즐비하게 늘어서는 새로운 편의점들에 비해 이벤트도 몇 개 없고 물건도 부족하니 손님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계를 건 운영이 아니었다면 염 여사 역시 몇 번을 접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염 여사의 무심한(?) 운영 철학에 힘입어 가게는 존재할 수 있었다. 주인공 '독고'가 야간 알바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러한 운영 철학의 연장선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봤을 때에는 '아싸'나 다름없는, 폐기 직전의 삼각김밥 같은 그런 편의점이지만 그곳에는 '사람 냄새'가 조금은 머무를 수 있었던 구멍가게의 모습이 서려 있었다.
누구보다 칼같이 날 서 있는 삶을 살았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린 채 짙은 그림자로 살고 있던 주인공 '독고'가 이곳을 만난 것은 행운이자 기회였다. 편의점은 경쟁에서 스스로 밀려난 공간이었고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일말의 피난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에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실현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간에 영혼을 채워 넣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소설에서는 '독고'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결코 주인공은 아니다. '독고'는 매개할 뿐 주도하지 않는다. 그 역시 관계와 소통의 부재로 고통을 겪다가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의 매개는 그 자신을 향한 소통의 시도였을 뿐이다. 다만 처지만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그 시도가 필요했던 이들에게도 똑같이 작용했을 뿐이다. 옛날 구멍가게에 모여들었던 동네 사람들처럼 말이다.


결국 '원 플러스 원' 같은 게 우리들 인생이다.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혼자 성취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빼나가는 삶을 선택한다. 꿈을 지워나가고 가능성을 지워나가고 관계를 지워나갈수록 행복이 가까워진다고 착각한다. 포기와 단절을 강요하고 목표와 성공만을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하나를 밟아야만 더 큰 하나를 얻게 된다는 경쟁의 미학 속에서 우리는 사람 냄새를 잃어간다.


사람 냄새를 유지하며 사는 일. 물론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돌아봐야 하고 나눠봐야 하고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지 않은가. 입도 없고 눈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림자로 살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닐 것이다. ALWAYS. 항상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먼저 내어놓자. 먼저 들어주자. 먼저 말해보자.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그 길 위에서 같은 처지의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도달하는지 경쟁할 필요도 없는 그 길.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 가자.


그 길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ALWAYS편의점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유혹과 책임을 인정하는 당당한 어른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