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다.
되어야만 하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어서
사랑받고 싶었고
성공해서
가족의 자랑과 보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이것도 사랑받고 싶어서지만)
뭐 해서
사랑받고 싶고
뭐 해서
사랑받고 싶고
많기도 했지만 모두 사랑받고 싶은 욕구였다.
그러나 그 사랑은
조건부였고
조건부가 아니라면
"그렇게" 되지 않아도
사랑받을 터였다.
그러니 그 노력은 모두 허사였다.
그 과정이 좋아보였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있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맛보았던 고통과 배신, 탈진들은
후회가 되었다.
왜냐하면 목표를 타인의 결정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본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이라는게
타인의 감정이기에
그것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아름다워보일지라도
감정이란 본디 충동적이고 이해할 수 없으며
감추고 포장했다가 길들일 수 없는 무언가로 커져
날뛰는 것이었기에.
그래서 이유를 찾고 배경을 찾고 분석하기에 앞서
그냥 나를 돌아보고 관찰하고 실험해보고 시작했다.
분석이란 그냥 역사의 해석 같은 것이어서
수만가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그럴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어떤 것도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는 것이었고
단한가지 진실은 인류의 역사에도 개인의 역사에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냥 졸리면 자고
다 잤으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아프면 낫기 위해 노력하고
현실에서 허락하는 한
가고 싶은데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소위 충동이 일어나는대로 해보았다.
그리고 그 충동대로 행동한 결과
내게 더 큰 자유와 창조력, 아이같은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들을 추구한다. 자유, 재미, 새로움. 정말이지 자주 쓰는 단어들이다)
과거와 비교해서 큰 맥락을 잡아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일상 생활의 충동은 건강을 가져다주었다.
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남보다 늦었고
그랬더니 피곤함보다 행복감이 짙어졌다.
제대로 먹기 시작하는 시간은 식당 브레이크타임인 3시였다.
커피가 필수가 아니어졌고 오히려 불편했다.
두통과 소화불량이 정말 이루말할 수 없이 좋아졌다.
가고 싶은데를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소박하게 먹어도 맛있고
그저 그 동네 도서관에 가보는 것이어도
즐겁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사람은 달랐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연락이 오면 반갑고
나도 생각나 연락하기도 했지만
상대의 인격, 위대함, 사회적 지위, 매력, 유용성과 관계없이
(그러니까 도대체 변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분명히 즐겁고 공평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깊은 대화와 재미있는 활동을 했지만
(겉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상대의 속을 알 수 없으므로. 함께 있을 때는 자기 속도 알기어려운 법이니까)
돌아오면 나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몸이 아프기도 했고 급격히 우울해지기도 했다.
의욕이 사라지기도 했고 갑자기 부족함이 느껴져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기도 했다.
여러모로 분석을 해보려고 했지만
타인을 분석해서는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본디 인간은 양파같은 것이어서 하나의 특징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그것이 나라는 양파랑 만나서 너무 많은 조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결론낸 맥락은 이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홀로 자연인으로 있을 때 건강하고 즐겁고 자유롭고 창조적이라는 것.
그리고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설명의 한계로)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는 (여러명을 만나면 또 조합에 따라 달라져버린다.)
자연인으로서의 어린 시절 내 본성이 더욱 강화되고 확장되는
쉽게 말하면 훨씬 나다움에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는
결핍과 잘못 살고 있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동의를 구하기위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동의해주고 칭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타인의 행동에서 잘못은 찾을 수 없다.)
뭔가 언어화, 공식화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것보다 인간 관계에서는 경험적 직관을 믿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타인에 영향력에 매우 민감함이
결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꽤나 타고난 나의 특성이고
부정하고 고치는 것보다 인정하고 나의 느낌을 믿기로 했다.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누구나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좋은 장점들이 있을 것이고 정말 죽어도 알 수 없는 그만의 그림자, 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꽤나 충동적이고 의지력이 약하고 쾌락주의적인 사람으로서
(다시말하면 모험을 좋아하고 유연하며 향유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나를 더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아이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꿈꾸게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온도따라 변하는 인간인가 보다.
얼음보다는 물로 물보다는 수증기로 살면서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공기 사이사이 포근히 떠다니며
사람들이 감기걸리는 것도 막아주고
자유롭고 무해하고 이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