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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Dec 30. 2021

어둡고 긴 터널을 건너고 있는 나에게, 당신에게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추운 겨울에는 여름보다 멋을 내기가 힘들다. 오늘처럼 창문을 걸어 잠근  안에서도  바람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더더욱. 오늘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하면서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선크림만 챙겨 바르고 옷은  ,   껴입었다. 작업실의 출입구는 외부와 바로 맞닿아 있는 유리문이기 때문에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는 따뜻하게 지내기 힘들다. 그래서 회사를 다녔을 때만큼의 출근 준비과정이 생략된지는 오래됐다. 전투 모드로 준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언니와 둘이서 작업에만 몰두하느라 립스틱은커녕 립밤 챙겨 바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노력이다.


이런 모습으로 지내다 문득 거울을 마주했을  보이는 광경은 놀랍다. 언니와 나는 초췌한 몰골을 대결이나 하듯 서로에게 내보인다. 그러다가 서로 포기한  오래라며 혀를 끌끌 차며 자리에 다시 앉는다.


왜 이렇게까지 다 놓아버렸을까. 외모도 삶의 활력도.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이상 반짝이던  모습은 없을 것이라며 빛나던(?) 20대를 추억한다. 거울을 보니 하루하루 낯빛도 칙칙해지는  같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도 같고 거울  내가 더욱 싫어진다. 퇴사  언니와 함께 작업실을 시작하면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자아존중감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회사라는 울타리에 직급, 직장이라 불리는 ‘ 들어가는 단어에 기대어지냈는데 회사 밖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담보하며 살아갈 것이 없어지니 오로지  실력과 경험에 의해서  삶이 흘러간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도 싫어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동굴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은 시간들이 시작된다.


그러다 며칠 전 문득 내 방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나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약 1년 10개월간의 노력과 탐구 끝에 내가 원하는 그림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되었다. 이 상태가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그림들을 골라 벽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평생 얻지 못했을 아주 소중한 것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암흑기 같았던 시간들을 지나면서 이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민낯, 나의 가족, 내 방 구조, 내가 좋아하는 물건, 사람, 노래, 영화…. 평소라면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조금 더 세밀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긴 관찰 습관 덕분인지 예전의 치열하고 빠르게 살던 삶을 놓아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숨 쉬듯 함께하는 내 주변의 것들이 나를 돕고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을 깨닫고 나서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이상 초췌한 , 예쁜 나가 아닌 그냥 ‘였다. 피곤하면 쌍꺼풀이 짙어지고 뿔테 안경을 쓰고 염색하지 않은 검은 머리를 묶고 다니는 . 그런 나에게 나는 정성스럽게 귀걸이를 꽂아준다. 평소라면 안경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싫어했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내가 좋다. 하루를 안녕하게  보내라며 살짝 미소도 지어준다. 나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면 주위 사람들도 아껴주고 싶어 진다. 드디어 어두운 터널에   줄기를 맛본 것이다.



오늘은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줄의 문장이지만 삶의 태도를 바꿔주는 마법 같은  마음가짐이  터널 속을 건너고 있는 이들에게 핫팩이 되어주길, 그리고  훗날 다시 터널을 걸어갈 내게도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와 언니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든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너무 따뜻해서 데일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말이다. 그림과 작품  주인공들의 웃는 얼굴이 항상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내가 그런 나의 모습, 삶을 간절히 지향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나와  주변을 밝히는 소중한 작업들을 계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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