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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14. 2020

그림 그리려고 퇴사할 때의 흔한 반응

08

  요즘은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삶의 양식이 다양해지고 내 방식대로 사는 사람도 많다. 근데 내 주변에는 평범하고 성실한 회사원들만 있다. 나도 약 7년간 회사생활을 해왔으니 주변에 직장생활을 오래 잘해오는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찾아온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는 회사 밖에 내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종잣돈을 모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 그 멋진 길이 내게는 아직 와 닿지 않았다. 그 삶을 영위하기 전에 무언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결국에는 내 결심대로 퇴사했지만, 그러기까지 주변인들의 반응이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했다. 정해진 순서처럼 부모님의 반대는 기본적으로 따라왔다. 기술로 생계를 유지해온 엄마는 딸이 같은 길을 가는 것에 반대했다. 딸들은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살길 바랐다고 했다. 여느 부모님의 걱정처럼 딸 둘이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걱정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은 회사생활이 견딜 수 없어서 퇴사하긴 했지만, 엄마는 ‘사람이 결국엔 마음 가는 대로 해봐야 한다.’라는 말씀과 함께 암묵적인 허락을 해주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퇴사할 무렵 친한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직장 동료들 평균 연령이 이모, 삼촌, 부모님 나이대가 많아 걱정하는 반응이 많았다. 또래가 많은 곳은 어떨지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듯이 조금 유연하고 공손하게 내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도대체 ‘여자가’ 이 정도면 적게 벌더라도 안정적이지 않냐고, 나중에 아이 낳으면 육아휴직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정말 좋지 않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이 장점들은 의미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중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동료들도 있었다. 언젠가 할 거면 조금 더 일찍 해보는 게 좋다고, 나중에는 다른 걸 시도해볼 여유조차 잃어버리게 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또 다른 반응은 내 실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입시 미술을 하지 않은 비전공자의 한계점을 걱정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 말이 맞는다 생각하며 움츠러들기도 했으나, 전 세계적으로 미술을 비 전공한 많은 예술가를 떠올리며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매일 그림 그리며 살다 보면, 분명히 내 길을 찾게 될 거라고 말이다.

     

  퇴사 몇 달 전, 인근 마을에서 진행한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일과 삶’에 관한 주제였다. 마음이 복잡하던 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오래전 직장을 그만두고 자발적 삶을 사는 작가님의 강연이 있었고, 일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조심스럽게 새로운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토론 참석 주민 중 한 분이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더 늦기 전에 퇴사하고 바로 시작해보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에 더 와 닿은 것 같다.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마을 잡지를 만드는 분이었다. 나도 저분처럼 살 수 있을까? 한 번 도전해볼까?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30살, 주변인들은 응원과 걱정을 반씩 해주었다. 나보다 윗세대들은 네가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 책임질 가정이 없어 과감한 결정도 할 수 있다고 하였고, 내 또래들은 적당히 놀다가 다시 이직하라고 이야기했다. 아주 가깝게 지낸 소수의 사람만 너는 재능도 많고 잘할 사람이니까, 무얼 하던 즐겁게 해보라고 했다. 우리 언니는 더 결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퇴사 전 극심하게 힘들 무렵 ‘너의 주변인을 생각하면 퇴사를 말리고 싶지만, 너만 생각한다면 퇴사했으면 좋겠다고.’ 이 말이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내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반응들을 뒤로하고 내 마음속 소리를 따라 퇴사했다. 


나는 내게 말했다.     

“고생 많았다. 이제 너를 위해 너만의 길을 나아가라.”

하고 말이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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