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자의 의도
인생을 통틀어 문제를 아주 많이 풀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수능을 준비하던 고3 시절입니다. 매일같이 문제를 풀어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점수가 크게 올랐던 시점이 있습니다. 공부량이 늘었다거나, 족집게 과외를 받았다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점수가 올랐습니다. 문제 해결력이 좋아진 것이죠. 이유는 바로 하나의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출제자가 존재하고 출제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라는 깨달음입니다.
출제자의 의도는 문제해결의 큰 힌트가 되었습니다. 문제를 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 단어를 썼을까? 5개의 선택지는 왜 이렇게 선정되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언어영역은 아주 결정적인 힌트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나중일이지만 강의를 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역할을 해보니 더 명확해졌습니다. 공학적인 문제이지만, 문제를 만드는 나는 분명히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채점을 해보면 점수가 낮은 학생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출제한 의도대로 문제를 풀어온 학생의 답안은 보람을 주기도 했습니다.
삶이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요즘 들어 갑자기 고3 시절을 떠올리게 된 것은 삶이 마치 시험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기 전까지 문제는 계속됩니다. 마치 끝나지 않는 시험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퀴즈대회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치지 않고 출제됩니다. 문제의 난이도는 계속 올라갑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문제를 가까스로 풀고 나서 한숨을 몰아쉽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찾아온 평온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평온함이 깨질까 하는 불안함이 다가옵니다. 새로운 문제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감입니다. 여지없이 다음 문제가 다가옵니다. 이렇게 계속 문제를 출제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자연스럽게 인생 문제의 출제자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출제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사가 연초에 올해의 영업 계획을 세워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객의 예산상황, 고객이 느끼는 제품에 대한 필요성, 올해 고객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계획 등을 알아야 정확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아니고, 1월 초에 얻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1월 초에 왜 영업 계획을 세워 오라는 걸까요? 이 문제의 출제자인 상사의 의도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해답에 접근하는 길입니다. 상사도 이미 정확한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를 출제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문제를 출제하는 역할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알게 됩니다. 실제로 완벽하게 이행될 만한 계획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당연히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자체가 목표입니다. 준비하기 위해서 고객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뒤 나름대로의 전략을 수립해 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계획의 완벽성은 아마도 끝까지 이뤄지지 못하겠지만, 점점 나아지게 됩니다. 때로는 Training을 위한 문제를 출제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문제를 출제해 주는 상사는 좋은 분입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주니어들을 위해 그렇게 까지 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장의 상사의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나 자신일 때도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나이를 먹어가면 자녀도 종종 문제를 출제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인간의 선택이 아니듯 문제의 출제자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과생들은 언어영역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항상 통하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답으로 보이는 답안이 항상 두 개씩 있어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난해 합니다. 5지선다의 답 중에 95점짜리 답과 90점짜리 답이 존재할 때도 있습니다. 5점의 차이를 알아내고 정답을 선택하는 것은 출제자의 의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언어영역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100점짜리 정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95점, 90점, 혹은 85점, 어떤 것이 더 적합한지 찾아야 하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정확한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출제자의 의도는 충격적이지만 정답을 찾으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는 인생이지만, 그 자체를 감사하는 삶이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방정식을 풀던 때를 기억해 보면, 답이 ‘해가 없다 ‘ 혹은 ‘해는 모든 수‘인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에도 ‘답이 없다’와 ‘모든 것이 답이다.‘같은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인생의 문제와 인생의 답은 어찌 보면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느냐 자체가 답일 수 있습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아야겠습니다.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말이죠.
인생이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면
분명, 출제자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감사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