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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중독 vs 일을 사랑

일중독증

by 글치

우리는 하루의 3분의 1, 일주일의 절반,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냅니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약 1,967시간(OECD). 하루 8시간 기준으로 1년 중 약 246일을 일에 쏟는 셈입니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버틴다면, 결국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의 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칫 위험한 조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인격적 관계여야 합니다. 일방적인 헌신이나 인정 욕구는 사랑이 아니라 중독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일을 도피처나 집착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건강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빠지는 것처럼요.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
– 『달빛』 중에서


진짜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을 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무시한 채 일만 붙든다고 해서, 일이 나를 사랑해 주는 법은 없으니까요.

세대에 따라 일에 대한 태도는 다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일에서 정체성과 성취를 찾고, 때로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삶의 다른 부분을 희생했습니다. 반면 MZ세대는 자기 시간을 중시하며, 일과 거리 두기를 시도합니다. 일은 생존이나 성공보다는 자기표현의 수단에 가깝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X세대, 바로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요?

일에 몰입했던 부모 세대를 보며 자랐고, 일과 선을 긋는 후배 세대와 함께 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독도, 무관심도 아닌 균형 잡힌 태도를 모색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건, 일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입니다.


일중독은 마치 중독성 물질처럼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고, 삶 전체에 부작용을 남깁니다. 고용노동부는 ‘일중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일이 삶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일뿐 아니라
타인과도 병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더 많은 일이나 성과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며,
일을 중단하면 불안과 상실감을 느끼는 병적 상태”



이런 상태는 결국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진짜 사랑은 나를 세우는 것이지, 나를 부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을 사랑하라’는 말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일은 인생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입니다. 그 조각을 미워하거나 무시하면서 전체 인생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간 속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일을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만 여기 지도, 삶 전체를 걸 만큼 맹목적으로 매달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나와 상대, 둘 다를 함께 세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 스티브 잡스


삶의 반을 이루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곧,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일을 사랑하되 그 일을 하는 나 자신부터 사랑하기로 합시다. 진짜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그 중심에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일에서 의미를 찾는 태도입니다.

모든 일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의미 있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떤 일도 세상과 독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NASA의 경비원이 “나는 우주탐험에 동참하고 있다”라고 말했듯이, 나 역시 내 일을 돌아보며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상의 생산과 시험을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합니다.

겉보기엔 단지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클릭 하나로 실제 공정과 실험을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제 자리에서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자각은 제 일에 대한 태도와 자부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둘째는 성장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제와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좋으니, 늘 새로운 시도와 관점을 찾아 움직이고 싶습니다.

늘 배움의 여지를 열어두고, 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일이 단지 반복과 소진의 고리가 되지 않으려면, 그 안에서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다는 믿음이 일을 이어가는 힘이 됩니다.


많은 것을 갖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두 가지, 의미와 성장만으로도 일은 충분히 행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이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곤하지 않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피곤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일과 나 자신을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https://ko.m.wikipedia.org/wiki/일중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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