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공감하기 - 포켓몬빵, GET 하다
#수집욕구에 대하여
수집욕구라는 것이 있다. 가치 상승을 의도하기도 하고 나에게는 중요한 무언가를 열렬히 모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다.
나 역시 향수를 모은다. 성년이 되고 처음 받은 선물이 동기가 됐다. 마음에 드는 향을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하나 둘 모은 것이 나름 컬렉션이 됐다. 자랑스럽게 장식장에 넣어 둔 적도 있지만 지금은 누가 볼까 조용히 숨겨뒀다. ‘한정판’이나 ‘레어템’같은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다.
어쩌다 고해성사 같은 얘기를 꺼내게 된 걸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찾아 먹어본 적 없는 캐릭터빵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포켓몬빵은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 캐릭터를 활용한 일명 ‘캐릭터빵’이다. 포켓몬스터는 일본의 닌텐도사에서 1996년 처음 선보인 게임 태릭터다. 후속작이 꾸준히 출시되며 30년 가까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포켓몬빵이 국내 출시 된 것은 1999년 모 공중파 방송에서 애니매이션을 방영한 직후였다. 당시도 포켓몬 캐릭터가 그려진 ‘띠고(떼고) 부치고 띠고 부칠’ 수 있는 ‘띠부띠부씰’이 인기였다. 150여종에 달하는 씰을 구하기 위해 스티커만 챙기고 빵을 버리는 일도 사회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꽃이 피는 것도 한철이라고 그 인기도 시간을 타고 제풀에 꺾였다. 사실 빵만 사라졌을 뿐이지 포켓몬의 인기는 꾸준하다. 몇 해전 나온 포켓몬고 게임은 지금도 마니아를 형성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래를 하는 ‘푸린’과 늘 자고 있는 ‘잠만보’를 좋아한다.
#그저 먹고 싶었을 뿐
“저기…”
동네 편의점과 쭈뼛거리는 목소리. 거의 2년 전 어느 날 같은 기시감.
그 때는 마스크가 애를 태우더니 지금은 포켓몬빵이다.
제연군의 “먹고 싶다” 한 마디로 시작된 ‘포켓몬’ 빵 잡기가 일주일 여의 술래잡기 끝에 마무리됐다. 일단 득템의 미소, 씨익!!!
처음은 언제나처럼 ‘자신만만’이었다. ‘그까짓 빵 쯤이야’하는 마음으로 푸린(딸기 크림)이랑 로켓단(초코롤), 파이리(핫소스) 하는 대충 알 것 같은 맛 선택까지 허용했다. 한 때 레어템을 키운다고 동네 방네 포켓스톱을 찾아 헤맨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해 볼 만하다고 ‘도전’을 외쳤다가 이내 사색이 됐다.
“편의점에는 없는게 없어” 흥얼거리며 들어선지 10초만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포켓몬빵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게 이번이 8번째’라는 편의점 직원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실려있었다. 아 이게 다 뭐람. 다음은 부지런히 정보 검색. 아니나 다를까 동네 방네 이집저집 할 것없이 난리라는 얘기가 쏟아진다.
관련 뉴스가 대선 때보다 흥미진진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 ‘그때 그 추억 소환’을 콘셉트 1998∼2006년 판매한 추억의 인기 빵을 16년 만에 재출시했는데 정작 그 안에 들어있는 띠부띠부씰 수집 열풍이 불붙었다…희귀템은 고가에 거래될 정도
- 현재 포켓몬빵은 발주 제한이 걸린 상태로 편의점별로 종류와 상관없이 1~2개 정도만 발주 신청이 가능하고
- 심지어 빵이 입고될 때까지 어떤 종류의 빵이 들어올지도 알 수 없다…말 그대로 복불복이란 얘기.
- 지난달 말 재판매를 시작했는데 이미 BTS까지 구해달라고 외칠 만큼 제대로 ‘품절 대란’이라는 사실.
- 편의점 앱 재고 정보를 뒤져 매장마다 도는 사람이며, 빵을 납품하는 차량을 따라다니는 사람들까지 천태만상.
- 일부 크리에이터들이 정보를 듣고 사전 대량 구입을 했는데 그 와중에도 주문 개수와 실제 받은 개수가 달라서 어디서 샜는지 찾고 있다는 썰.
- 대신 사다달라거나 재고 정보 나눔 해달라는 것은 기본이고, 빵을 대신 먹고 씰만 줄 사람을 구하거나 제발 빵만이라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ㅜㅜ
# 은근과 끈기 본능 발동
이럴 때 왜 하필 은근과 끈기 본능이 발동을 하는 건지.
먼저 판매를 시작했다는 동네 C*편의점에서 정보를 얻었다. 7~8년 전 초등학교 인근 문방구에서 쿠키런 고무 딱지를 구하느라 애썼던 경험을 다시 살렸다. 몇 차례나 정말 ‘불쌍한’ 눈으로 빵셔틀 중이란 안타까운 현실로 공감대 형성하고 공급 차량이 도착하는 시간 정보를 획득했다.
다시 몇 번은 그 시간을 맞추느라 발 동동. 급격하게 현타가 왔다. 아하 이 나이에, 이게 다 뭐 하는 거람.
그리고 오늘, 드디어 배송 차량을 만났다.
이 날씨에 벌써 반바지를 입고 나온 어느 청년이 편의점 직원에게 도착 시간을 두 번인가 묻는 걸 봤다. 이게 그 유명한 ‘오픈런(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 구매하는 현상)’인가. ‘혹시’하는 마음에 옆에서 바나나 우유를 골라 들고 기다려봤다.
이날 매장에 들어온 포켓몬빵은 단 두 개. 편의점 직원과 청년, 내 눈이 마주치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직원은 빵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나와 청년에게 하나씩 건네줬다. “사이좋게 나눠 가지세요”
이게 다 뭐라고, 1500원을 내고 그만 히죽하고 웃고 말았다. 그 와중에 초코크림이다. 제연군의 먹고 싶은 순서 3번째다. 구하느라 애쓴 일주일 +α의 시간과 상관없이 입 안에 털어 넣어 사라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얼마 없으면 추가 생산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럼 이런 일이 ‘그랬었지’하는 작은 해프닝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더 오래 간다고 해도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더 이상의 시간을 쓸 생각은 없다.
그래도 당분간은 "없어요" “오늘 안 와요” “언제 올지 몰라요” “랜덤이라 알 수 없어요”하는 포켓몬빵 안부가 궁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