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포 Sep 02. 2021

네 인생의 과일은

과수원집 셋째딸은 고기를 좋아했다

그 과수원은 학교 운동장보다 컸다. 한쪽 울타리는 탱자나무, 반대편은 자두나무로 둘러쳐져 있었고 그 안에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들이 골골지어 자랐다. 지금은 대부분의 과수원이 단일 품목 중심이고 기업형으로 운영하지만,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이것도 키우고 저것도 키우는) 종합형 과수원이 많았다. 


키큰 나무들의 밑에는 딸기들이 옹기종기 자랐고, 가정집 마당 쪽으로 가면 포도밭과 토마토밭, 참외밭이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의 극치였다.


과수원 입구에서 가정집까지 대각선으로 찻길이 나 있었는데 150미터쯤 되는 그 길의 풍경이 철마다 달랐다. 앙상한 가지 위에 눈이 내려앉는 겨울부터 잎이 오르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모든 순간들이 별스러웠다. 그렇게 멋지고 큰 과수원인데도 농장의 이름이 없었다. 그냥 과수원이었고 그 집 아이들은 과수원집 아이들이라고만 불렸다. 


과수원집에서 늘 과일을 잘 먹고 자라서인지, 원래 타고난 체질 탓인지, 과수원집 아이들은 피부가 뽀얗고 윤기가 흘렀다. 그 중에서도 셋째 딸이 제일 예뻤고 공부도 제일 잘했다. 글씨도 깔끔하게 썼고 옷매무새도 단정했다. 그 아이는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과일이 보내주었고 결혼도 과일이 시켜주었다. 


과수원집 이웃에서 자란 나는 덕분에 과일을 원없이 먹었다. 무슨 과일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딱히 무엇을 선택하지도 못했다. 과수원의 갖가지 과일들을 두루 섭렵했기 때문에 무엇이 최고라고 꼬집기가 힘들었다. 대신, 12년이나 같이 학교를 다닌 과수원집 셋째 딸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 애가 결혼을 하기 며칠 전이었다. 너의 최애 과일은 무엇이었니?


그 애의 답은 엉뚱했다.

“난 고기가 좋아.”

그리고 덧붙였다. 과일은 너무 힘들다고. 혹여라도 과수원이라도 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때 처음 알았다. 늘 옆에서 지켜보고 살면서도 과수원의 노동은 생각하지 못하고 먹기에만 몰입했음을. 셋째 딸의 뽀얀 피부 이면에도 아픔이 있었음을. 돌이켜 생각하면, 이것저것 과수를 두루 재배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인은 1년에 50kg(1인당) 정도의 과일을 먹는다고 한다. 사과와 감귤, 복숭아, 포도 등이 오랫동안 수위를 다퉈온 선호과일이다. 50kg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지만 세계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보면 된다.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이 57.7kg이었으니 과일이나 밥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게다가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과일 소비량은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으니 2~3년 내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과일 순위는 토마토와 바나나가 1, 2위를 다투고 수박, 사과, 자몽, 포도, 오렌지, 망고가 뒤를 잇는다. 여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인데, 열매의 진수는 과일이다. 과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구에 자라는 열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과일로 불리는 열매는 고작 수십 개, 우리가 접하고 있는 과일은 20~30개 수준이다. 그들 대부분은 수확한 해나 길어야 다음해 정도면 사라진다. 우리가 먹는 과일은 그러니까 매번 새로운 열매로 태어나 건강하게 자란 결실들인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꿈이 뭐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