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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ug 25. 2018

술은 신인가, 웬수인가

술,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사람들은 흔히 “술이 웬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들은 절대 “술에 감사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간혹, 시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술은 신이요, 동반자다”는 말을 건네지만 약발 떨어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특히 연말연시에 술과 함께 지낸다. 술로 빙자해 사람을 만나고, 술을 빌어 격정을 토로하고, 술로 인해 망신도 당한다. 그러니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기도 하고 넓기도 하다. 그런데 왜, 술을 “웬수”라 원망만 하고, “감사”의 인사는 아니 할까.

술로 인해 어떤 실수를 했다 해도 “술 때문에”란 핑계거리를 댈 수 있고 이를 받아들여 주기도 하니 술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술로 인해 실수도 많이 하지만 그런 틈새마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팍팍하고 견디기 힘들어질까. 그런 마음으로 헤아리면 감사는 못할 망정 웬수라는 주홍글씨를 다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아, 그 동안 괄시하고 모함해서 미안하다.”
애주가들도 비주가(非酒家)들도 이렇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에또, 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도 민주화도 고색창연한 문화유산도 없었으리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상표권으로 등록하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상표권 등록이 오락가락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무형의 가치, 기대치가 불분명한 일에 실비(實費)를 사용하기란, 속물들로서는 지난한 일이다. 

한 쇼핑몰에서 MD 설문을 했는데 ‘00년 최고의 아이디어 상품’에 ‘폭탄주잔’이 3위에 오른 적이 있다. 폭탄주잔, 평범한 유리컵에 눈금을 새겨 넣으면 완성되는 컵이 등장한 시점이다. 첫 개발업체가 대박을 내자 제법 예쁜 모양의 눈금 유리잔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감탄이 쏟아졌다. 아, 한국인들의 저 놀라운 술사랑, 놀라운 응용력, 놀라운 아이디어.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폭탄주 종류만 봐도 감탄의 근거는 충분하다.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중성자탄주, 수류탄주, 동동폭탄주, 충성주, 벤처폭탄주(폭탄의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회오리주, 골프주, 병아리주, 흡혈귀주, 오르가슴주, 소방주, 용가리주, 난지도주… 해가 갈수록 날이 갈수록 폭탄주는 늘어난다.       


폭탄주는 시베리아의 벌목공들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위를 이기려고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신 게 출발점이라 한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항만 노동자들이 ‘맥주+위스키’의 폭탄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한국으로 건너와 폭탄주의 신분이 급상승한다. 노동의 세계에서 군대와 검찰 같은 권위의 제복을 입는 것이다. 이후 관료사회 전반과 기업들로 퍼져나갔다. 나름대로 그들 모두 권위의 제복을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한국인인가?

하지만 어떤 애주가들은 그 배경을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술 제조사의 저급함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독과점 체제로 성장한 한국 주류 회사들이 좋은 술 개발을 등한시했어요. 아무 소주나 맥주나 내놓으면 팔리니까 굳이 좋은 술 개발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죠. 저급한 술을 마시다 마시다 지친 애주가들이 기성품을 조합해 자기에게 맞는 술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마신 게 폭탄주 붐을 이룬 겁니다.”    


은근 옳은 말도 섞여 있어 부정하지는 않았다. 주류 회사들의 독과점 수익구조는 한국의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그들로 인해 전통주는 쪼그라들고 엄한 희석 소주들이 한국의 전통주인냥 행세하게 되었으니. 맥주는 또 어떤가. 수입맥주들이 무자비하게 쳐들어오지 않고 해외 여행이 자유로운 시대가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오줌맛이 맥주맛이려니 여기고 취해 있을 것이다.  

 

술을 진실로 사랑하는 노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물었다.  

“술은 무엇입니까?” 

“술? 술이야말로 전부지. 술은 세상 전부야.”

말이 필요 없었다. 술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입맛을 다시는 것이, 벌써 술에 취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어떤 술이 좋은 술입니까?"

"눈앞에 있는 술이지."

원망도 눈총도, 사리도 분별도 눈 녹듯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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