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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Sep 05. 2018

분뇨 없는 유일한 동물

아버지들은 쯧쯧

오른쪽 눈이 욱신욱신 쑤셔 안과병원에 들렀다. 다행히 큰 병이 아니라 알레르기성이란다. 의사는 “환절기에는 몸을 무리하게 놀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눈’과 ‘환절기’와 ‘무리’가 무슨 상관일까? 마땅한 연계성이 떠오르지 않아 구태여 질문을 했다. 의사는 쉽고 짧고 친절하게 그 이유를 알려 주었다.  

“계절이 바뀔 때 질병이 찾아오는 이유는 ‘몸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런 몸들은 대개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입니다.”

즉, 의사는 ‘당신 몸은 과거보다 면역력이 떨어져 약체가 돼가고 있으니 건방지게 옛날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고마운 의사였다.


며칠 뒤 한 모임에 나가 ‘눈과 환절기와 무리와 면역력’에 관해 썰을 풀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벌에 관한 썰로 응대했다. 우리나라는 밀원(蜜源;꽃밭)이 작아서 믿음직한 ‘한봉가(韓蜂家)’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부터, ‘진정한 벌꿀’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져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로폴리스야말로 면역력 증강에 가장 효과가 좋은 식품이고, 양봉(養蜂)이야말로 가장 친환경적인 산업이며, 벌이야말로 인간들이 존경해야 마땅한 모범적 동물이었다. 그가 전한 벌들의 삶에 관한 대화 일부를 옮긴다.

   

“일벌은 20일밖에 못 사는데 수벌은 5개월가량 삽니다. 수벌은 노는 게 일이죠. 5개월 동안 한량처럼 놀다가 여왕벌과 딱 한 번 교미를 하고 죽지요. 물론 여왕벌에게 선택받는 수벌은 딱 한 마리이고 나머지 수벌들은 5개월 동안 놀다가 교미 한번 못해 보고 죽는 겁니다.”

“일벌은 수벌보다 왜 그리 빨리 죽지요?”

“기본 수명이랄까, DNA랄까… 하지만 일에 지쳐서 빨리 간다고 볼 수도 있죠. 날개가 헤져서 죽으니까.”

(아아, 날개가 헤져서라니… 모두 깊은 탄식을 했다.).

“날마다 노는 수벌들을 보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도 많았겠지요?”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닙니다. 자기 역할을 하는 거니까. 노는 것도 중요한 역할 아니겠어요? 만일 수벌들을 다른 데로 쫓아버리면 일벌들 중 일부가 노는 벌로 변합니다. 일종의 시스템인 거죠.”


꿀 애호가의 벌 예찬론은 계속됐다.

‘벌은 꽃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꽃은 벌로 인해 밭을 이룬다. 무엇보다 벌은 분뇨 없는 유일한 동물이라 냄새는 물론 탄소배출량 걱정도 없다. 프로폴리스의 가치를 단순히 면역력 증강에 맞춰서도 안 된다. 생명의 젖줄이자 천연의 강장, 생명체들의 순환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런 역할을 음미해야 한다. 검증된 바는 없지만 양봉업자들은 대개 정력이 좋다. 평생 산에서 살고 꽃밭을 찾아다니며 사는 남자들, 양봉업자들은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등등등....’

그가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우리는 꿀을 먹으며 벌을 떠올리지만 벌에 앞서 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은근히 쓸쓸해졌고 꽃을 본 지 얼마인가 되새기게 됐다. 벌을 무서워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 아닌가... 생각도 바뀌었다.     


안과에서 진료 대기 중에 고객용 책자를 훑다가 본 흥미로운 리서치 기사 하나. 영국의 한 기관에서 세계 101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무엇인가’를 물었고… ‘세계인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단어’ 70개를 선정한 내용. 그 가운데 몇 개를 전한다.

1위는 어머니(Mother). 압도적이다. 2위 열정(Passion), 3위 미소(Smile), 4위 사랑(Love)… 대략 이해 가는 순서요, 이들의 순위는 매년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 중간쯤 이르러 ‘빵’이나 ‘호박’ 등의 먹거리, ‘집’이나 ‘옷’ ‘우산’ 등의 생활필수품이 등장한다. 놀랍게도(당연하게도?) 70개 단어 중에 ‘아버지(Father)’는 없다. 세계인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호박이나 우산보다 못한 존재라고. 평생 일만 하는 아버지들, 꽃을 돌아볼 겨를이나 있을까.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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