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짜증날땐 짜장면 우울할땐 울면 복잡할땐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by poppy



화를 ‘잘’ 내는 법이 따로 있는 걸까?


왜 누구는 화를 잘 다스려서 본인만의 무기로 만들고

왜 누구는 화를 이기지 못해서 감정에 잡아먹히는 걸까.


특히 ‘짜증’은 사람을 집어삼키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다.

감히 짜증 따위에게 먹힐 수는 없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매번 감정에게 잡아먹혀가며 단련된 어른이가 소개하는 욱하는 마음 대처방법. 실생활에서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었던 작고 소소한(하지만 강력한) 꿀팁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종종 생각날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이 짜증에게 맛있게 잡아먹히는 중이다. 하울은 스트레스에 개복치인듯 하다. 나또한 많이 먹혔었다.








환기) 본인만의 주문을 외친다


‘짜증 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이 짧고 굵은 멜로디가 언제 적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 현재에도 일상생활에서 몇 번이고 박자에 맞춰서 흥얼거리는 사람이 여기 있다. 짜증 날 때는 조건반사처럼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몇 년째 쓰고 있는데 꽤 유용하다.


사람마다 감정이 짜게 식는 포인트는 다 제각각이지만, 짜증이란 감정이 입력되었을 땐 반사적으로 '아.. 짜증 나네.'라고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템포 뒤에 이 멜로디를 흥얼거려 보는 거다. 얼굴표정이 어떻든 상관없다. 주변에 누가 있든 말든 상관없다.

규칙적인 비트에 맞춰서 작고 낮게 읇조린다.

손가락을 흔들어도 좋고, 발을 굴려도 좋다.

그 상황을 잠시 ‘멈춤(Pause)’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유튜브 열심히 보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듯이.


왜인지는 모르게 나한테는 정말 효과가 있었던 방법.

굳이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감정이 던진 ‘미끼’를 바로 물지 않고 버틸 '시간'을 마련해 준 것 같다.

잠시 심호흡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느낌이랄까.


상상해 보자.

감정이 당신이란 고기를 낚기 위해 맛있어 보이는 여러 종류의 미끼를 던지고 있는 모습을.


미끼를 던지자마자 바로 낚여서 팔짝 뛰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녀석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조금 신중하게 된다.


각자 스스로에게 효과 좋은 짜장면 멜로디를 찾아보는 걸로.


내가 낚이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때 청개구리 심보를 발동시켜서 미끼를 물지 않고 ‘버텨보는 것’이다.


속도) 화가 날 땐 '선비걸음'으로



화가 난 걸 반드시 그 자리에서 당장 풀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 지인 중에도 딱 그런 사람이 있는데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감정이 극에 달한다.

본인도 그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만 조금이나마 살 것 같다고 한다.


옆에서 바라볼 때 마치 감정과 같이 그 사람도 활활 타버리는 것 같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건지, 화를 내서 화가 난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 같은 모습이 조금 안타깝다.


입 밖으로 감정을 배설하듯 쏟아낸다고 화가 잘 다스려지면 좋겠지만 그런 마법 같은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옆에 있는 사람까지 두 배쿠폰을 쓴 것처럼 같이 기분이 다운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물건 살 때나 사람을 사귈 때는 그렇게 꼼꼼하게 가성비를 따지면서 왜 감정은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는 걸까.

감정도 분명 가성비 있게 소비해야 한다.

그 잔재주를 부리는 장단에 함부로 놀아나면 안 된다.


느긋하게, 여유가 있는 것처럼. (여유가 없더라도)

반박자 늦게 반응해 본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걸음걸이를 걷는 것 마냥 허리를 세우고 꼿꼿하게. 그들은 천천히, 단정하게 걷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빠르거나 성급한 걸음은 경박하게 여겼다고.

어떤 일이 있던 침착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급하게 달리다가 발목삘 수 도 있다.)


이건 상황을 외면하는 것 과는 분명하게 다른 개념이다.

천천히 그 감정에게로 걸어가다 보면 조금은 온도가 식게 되어있다.

주의할 점은 온도가 식은 것 같다고 딴 길로 새면 안 된다.

그 감정은 당신이 도착하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용광로 같았던 감정이 점점 식어서 내가 닿아도 화상 입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때 ‘제대로’ 물어보면 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6하원칙으로.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화가 난 이유가 꽤나 불분명하다는 것.

‘그냥’, ‘욱해서’ 같은 순간적인 것들 말고 명확한 답을 찾으려고 들춰보면 이유가 잘 안 보이거나 정말 작은 티끌일 때가 종종 있다.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물어볼 때의 꿀팁은 '쉽게' 물어봐야 한다.


본인 안에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좋다. 이럴 땐 특히 6살~7살 꼬마 어린이를 대할 때처럼 물어보면 꽤 간단하게 해결될만한 답변을 해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쉽게 말하는 법도 까먹은 느낌이다. 빙-빙 돌려서 어렵게 말하는 기술만 늘었다.


요즘 나는 내 안의 어린애를 키워내는 중이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생각) 오늘의 삶은 어제 죽은 내가 바라던 삶


나만 그런 건지. 주변사람들도 이런 건지. 대놓고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자주 (혹은 매일)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을 상상한다.


정확히는 이런 내용의 상상이다.

"내가 어제 죽었었는데 신에게 목숨을 부여받아 오늘 하루를 더 사는 거라면? 내가 과거의 기억을 잃은 거라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대로라면 나는 판타지 장르 드라마 주인공의 삶도 가능하다. <어제 분명 죽었는데 오늘 다시 목숨을 받아서 살게 된 주인공>의 컨셉으로 사는 중이다.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게 죽음이다. 영영 살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른다.

먼 곳을 쳐다보면 발밑에 있는 웅덩이는 잘 안 보인다.


짜증이라는 감정, 화가 나는 감정, 모든 감정들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펼치는 방어기제를 분석해 보자.

누구나 본인만의 발작버튼(역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역린은 용의 비늘 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이건 본인만이 가진 약점으로 이걸 건드리면 용이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인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한 버튼을 안전장치 하나도 없이 방치하는 건 버튼을 누른 사람만의 잘못일지, 방치한 사람의 잘못은 없는 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게임에도 경고가 몇 차례 있고 나서야 게임오버다.


그 감정들을 부정하기보단 왜 그 방식으로 표현된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드라마 볼 시간이 없다.

내 인생이 곧 드라마고 내가 주인공이라 너무 바쁘다.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참 여린 존재다.

우리 집 똥강아지도 있는 날카로운 이빨마저 없다.

그런 힘없는 생명들이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한다.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지는 않으면서.

존중받을 만큼 성숙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감정에 휘둘리고 잡아 먹히기 바쁘다.

오래 사는 것보다 ''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기준은 각자 다르고 답도 없다. 본인이 그렇다고 하면 그게 곧 정답이 되는 것이다.


생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매일을 오늘 죽는 것처럼 '최선'으로 살고 싶다.



모두 본인만의 드라마 속 주인공인 삶이다.

화면에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주인공이다.


카메라를 자꾸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본인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