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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Nov 13. 2023

어바웃 날씨와 지하철

어바웃 시리즈

올해 5월 15일에 작성한 글을 일부 수정해 올려본다.


5월 15일은 성년의 날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성년의 날이라니! 나에게 5월 15일이란 마냥 스승의 날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한 날도 된다는 것이 참 신기했던 날이었다.


내가 성년이 되어 달라진 게 있을까? 문득 생각을 해 보았다.

많은 것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에 비해서 완벽히 바뀐 화장법을 구사하지도 않고, 때로는 그냥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어렸을 때에는 어른이 되면 완전히 고상한 삶을 살 줄 알았건만,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성년이 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날씨와 지하철이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날씨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우리 학교에는 어딜 가나 그늘이 있었고 지붕이 있었다. 비가 오는 것이 대수는 아니었다. 지붕 밑으로 건너가면 그만이니까!

해가 쨍쩅한 날은 산책하기에 조금 더 좋은 날씨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면서부터 날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학교까지 편도로 1시간 반이 걸리는 일명 '통학러'로서 지내다 보니 더욱 그랬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은 정말 힘들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비 묻은 우산까지 꾸역꾸역 들고 타려면 불쾌지수는 등굣길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아끼는 신발을 신고 나온 날은, 신발과 양말을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축축하고 찝찝해지는 내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변해 벌니다.

물론 비에 젖는 날도 나름의 운치는 있다. 20살 4월, 흩뿌리던 비 사이의 밤 산책은 비록 좀 춥기는 했어도 참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의 바깥은 여전히 힘들다...


반면 날씨가 따사롭고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면 벌써부터 마음이 상쾌해진다.

넓어서 걷기가 힘든 캠퍼스도 마냥 예쁘게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점심시간 막바지, 오후 수업 시작의 직전 즈음의 학교 연못 근처는 청춘의 활기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평소에는 지름길로 갔을 길들을 괜히 빙 둘러서 가게 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꽤 즐겁게 만드는 것... 이게 따사로운 날씨의 매력이다.



여기까지가 날씨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지하철 이야기로 넘어 온다.

나는 어렸을 때, 지하철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부모님이 태워 주시는 차가 있었고, 학생의 특성 상 행동 반경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지하철을 자주 타 보지도 않았다.

뉴스에서의 '지옥철'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고,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나?'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지하철은 내게 보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배차 간격을 고려해야 하고, 막차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자그마치 15분을 기다려야 하는 5호선을 타기 위해 사람들은 환승역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두 번의 지하철 환승과, 한 번의 버스 탑승으로 완성되는 통학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150원밖에 되지 않는 지하철 요금의 인상을 뼈저리게 경험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날씨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하철 배차간격을 사수하기 위해 뛰고, 몸을 우겨넣고, 요금 인상에 울상인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조금 생각해 보았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된다는 뜻 같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나름 치열하게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면학을 했고,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고, 자기 전까지 또 면학을 했다.

나는 노력했지만, 학교가 내게 준 그늘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보다는 나 자체에만 포커싱을 하게끔 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오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충격을 받았다.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무척이나 많은 것들이 필요함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20대의 첫 해를 마무리해 가는 지금, 나는 더 치열하게 주변의 중요성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것이 이번 성년의 날을 맞이하며, 아침에 우산을 챙기며, 열차를 타기 위해 질주를 벌이며 내가 얻은 나름의 느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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