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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Nov 20. 2023

어바웃 끼니와 식사

 이번 학기를 보내며 깨닫게 된 점이 하나 있다. '끼니를 때우는 것'의 슬픔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빡빡한 학원 스케줄을 견뎌야 하는 학생들은 30분의 식사 시간을 틈타 급하게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거나, 근처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빵을 사먹곤 한다. 학원가, 특히 학원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에는 '빨리빨리'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음식점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동 시간 때문에 밥 먹을 틈이 없는 학생들은 학교 내 편의점에서 커피와 빵을 사가곤 한다. 특히 강의실에서 먹을 것을 생각하면, 냄새나는 음식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먹을거리의 종류도 한정되는 일이 다반사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시간의 점심시간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회사를 나서 식당에 가고, 후식으로 카페에 들려서 커피 한 잔까지 뽑아오기에 1시간은 촉박하다. 회전율이 빠른 밥집에 가서 밥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은 지나 있다. 최근에는 팀별로 다함께 식사를 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아예 간편하게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현대인들은 넉넉치 못하다.

 얼마 전 소위 말하는 '보은' (대학 신입생 때 선배가 밥을 사주는 것을 밥약, 이후 신입생이 선배에게 다시 밥을 대접하는 것이 보은이다) 을 위해 대학가로 나가 일본식 가정식을 먹게 되었다. 1인분에 15,000원이 넘는 금액... 30,000원은 금방 나간다. 식사가 끝이 아니라, 카페까지 가면 기본 20,000원은 기본이다.

 식비만 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치솟는 물가에 비해 소득은 제자리인 사람들은, 고정 지출 중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식비에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결국 현대의 식사는 시간과 예산의 압박으로 '끼니'가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식사'가 굉장히 중요한 나같은 경우, 끼니를 때운다는 것은 고달프고 슬픈 일이다.


 나는 편의점에서의 식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 꺼리게 된다. 많이 발달되었지만 여전히 간이 센 음식들과, 집에서 만든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 그리고 맛있지만 그만큼 높은 칼로리와 적은 단백질과 어마어마한 지방...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얼마나 건강하겠냐고 지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에게 식사란 따뜻한 음식 그리고 가능하다면 신선한 채소와 함께,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깐 동안이나마 합법적 힐링의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것과 같다. 일상으로부터의 합법적 도피.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혹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음식만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몰입형 '식사'이다.

  사실 식사가 얼마나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인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식사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일상에서 잠깐 쉼을 제공해주는 시간.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과 비싼 음식을 먹어도 내가 편안하지 않다면, 식사라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의 식사는 점점 '끼니'가 되어 가고 있다. 때로는 불편한 사람들과 밥을 먹어야 해서, 시간이 없어 편의점에서 급하게 먹어야 해서, 우리의 식사는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이어트 중 보상의 의미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는 '치팅 데이' 처럼, 이제 우리는 끼니의 연속에서 나를 위한 식사를 하는 '이팅 데이'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 없는 일상, 끼니가 팽배한 일상.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식사이다. 배를 채우고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행위가 아닌 온전한 음미가 필요한 지금, 우리의 식사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나로의 온전한 몰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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