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약속을 하다 보면 거의 필연적으로 결제를 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리고 이 때 우리는 페이의 방식에 직면하게 된다.
더치페이를 해야 하나? 이번은 내가 사고 다음번에는 네가 살래? 라는 상황이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상황 중 하나이다.
더치페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 저울과도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더치페이의 저울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사실 각자 먹고 싶은 1인분의 메뉴를 시켜먹고 따로 계산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 하지만 모든 음식이 1인분으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치페이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더치페이보다는 한 번은 내가 사고, 한 번은 네가 사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렇듯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참 다르다 싶지만... 그냥 나의 생각을 써 보고자 한다
(1)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에서의 더치페이
정기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하지 않은 사람, 혹은 어떤 의무의 성격을 띠는 만남에서는 더치페이가 참 편하다. 다음 약속을 기약하기 애매할 때는, 각자 먹고 싶은 매뉴를 골라 따로 결제하거나 1/N을 하는 것이 가장 덜 곤란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 친한 사람과의 더치페이
친한 사람, 혹은 가까운 사람과는 밥을 같이 먹을 때가 많다. 나는 이때도 더치페이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에는 내가 사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가격대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방식을 배척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사실 더치페이는 피상적인 예시일 뿐, 속을 들여다보면 어떤 저울의 원리가 내 마음 속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저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다 보니, 내가 준 만큼 받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한 때가 생겼다. 내가 가지고 있던 더치페이와 저울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부분이 참 많았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내가 힘듦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아주 적극적이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아니다. 드라마에서, 혹은 인터넷/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친구로부터 무척이나 공을 들인 생일 선물을 받았다거나, 연인이 자신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먼 거리를 바래다 주거나 등등을 듣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좀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그걸 해 줘야 하는데, 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은 아니기 (...) 때문이다. 친구 생일이면 축하한다는 문자와 함께 선물을 보내는 정도가 다고, 연인이라고 해도 집까지 바래다 주기보다는 그냥 지하철역까지 같이 오면 된다. 내 저울 상에서 일방적인 희생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불평형, 그리고 불편함의 상태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이 저울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영점이 맞지 않은 저울이었다면, 서로 완전히 다른 생각과 상황 속에 있었다면 나에게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언제나 영점을 맞추고 저울을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의 영점에서는 최대한으로 잘해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는 해줄 만큼 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저울에 못 미쳤을 순간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옹졸한 시선으로 인간관계의 저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내가 심리학과를 지망하며 자기소개서를 쓸 때, 아마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도 알고 싶었지만 인간관계를 더 잘 알고 싶었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기준의 저울을 들고 다니는지, 각자의 영점은 어디인지가 모두 달랐기에 궁금했고 또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보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되며 다른 사람들의 영점은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며, 한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고 더 깊이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전에 내가 여겼던 불평형의 상태가 새로운 영점이 될 수 있도록 영점 조절을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의 영점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여러분의 저울의 허용치는 어디까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