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오늘은 평소와 다른 말투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이전에도 이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지만, 여전히 제게 가장 어려운 건 사랑을 정의내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간 나를 울게 만든다'고도 하고, 바보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에 딱 들어맞는 정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덜 효율적인 사람이 된다고는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9살 즈음 우리 집 강아지를 위해 만들어 준 집인데요, 사실 박스를 가위로 잘라서 만든 거라 실질적으로 강아지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게 핵심이지만...
이 집을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이고 앉아 가위로 박스를 오리고, 물감을 가져와서 칠하고 말리고, 힘겹게 붓으로 제가 좋아하는 글귀들을 써넣었던 것이 기억나요. 누군가는 강아지도 좋고 너도 좋으려면 그냥 시중에 파는 걸 사 주어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집와 제가 만든 집은 어떤 의미에서든 (퀄리티, 가격, 그리고 마음...)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사랑하면 떠오르는 형태 중 하나는 바로 가족 간의 사랑이예요.
전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고, 외출도 그리 자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조금 완화되던 고2~고3 때 학기 중에는 거의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먹고 싶은 과일도 많고, 공부는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엄마아빠가 주말이 되면 매번 편도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셔서 5분 동안 얼굴을 보고 서둘러 과일이나 먹을 것들을 챙겨주셨을 때가 있었어요. 저는 자습하다가 엘리베이터 타고 잠깐 내려오면 되는 거리이지만, 5분을 보자고 짐을 싸고, 말이 편도 50분~1시간이지 소중한 주말의 한나절을 날리는 일을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매주 하고 계셨던 거죠!
전 쉼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접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나의 쉬는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할애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그것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일이라면 더더욱 좀체 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방문을 1년 넘게 해 주신 부모님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곤 합니다!
그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사랑은 생존에 유리한가요?
피상적으로 보았을 때 사랑은 생존에 유리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 위주로 굴러가던 시간과 공간 속에 다른 사람을 집어넣고, 두 개 이상의 중심으로 내 생활을 꾸려나가는 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일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사랑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바보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혼자일 때만큼 똑똑할 확률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럼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떤 형태로든' 사랑을 하고자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는 게 더 이득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단편집 중에서도 가장 감명깊에 읽었던 <스펙트럼> 의 이야기를 생각해 냈습니다. 책에서 희진은 표류당한 우주비행사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계인들 사이에서 '루이'라는 생명체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서로를 아껴주며 (사실 루이가 일방적으로 보호해주며) 지내게 됩니다. 사실 루이는 몇 개월, 혹은 몇 년마다 한 번씩 형태를 달리합니다. 뷰티 인사이드라고 생각하면 될 듯?
희진은 루이가 사용하는 색채어를 해독하려고 시도하지만, 해독이 끝나기 전 다른 외계 종족들의 습격으로 둘은 헤어지게 되고, 희진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구로 돌아옵니다. 희진이 사망한 이후, 이 글의 서술자인 희진의 손녀는 희진이 해독했던 루이의 언어를 보게 되죠.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저는 여기서 사랑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생각해 되었습니다.
첫째, 말 그대로 뷰티 인사이드입니다! 작 중 루이는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지만, 희진은 형태가 달라진 그를 루이로 인지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거든요. 물론 사람의 외양이 사랑에 빠지는 데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내면을 더 보게 되고, 그 내면이 결국 나에게 그 사람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형태로 다가오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째, 사랑은 해독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희진은 루이가 사용하는 색채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노력한 결과 작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랬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생각도 행동도 배경도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언어가 달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언어를 해독해 보게 된다면 나를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이 과정이 저는 사랑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단순히 명을 연장하고 유지하는 과정만이 생존인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가치를 진정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생존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어디서든) 라는 것이죠
그리고 사랑은 생각만큼 아주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밤에 추울까 침대가 잘 데워지도록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이불을 가지런히 덮어주는 것이나 상대방의 잘 된 일이나 기쁜 날을 온 마음 다해 축하해 주는 것이나 다음 날 힘든 통학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밤늦게까지 다크서클을 끼얹으며 전화를 하는 것이나 너무너무 귀찮아도 상대방을 위해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 등 아주 사소한 것이 사랑을 만들고 그게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 그렇습니다 ㅎ_ㅎ
여러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