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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Apr 08. 2024

어바웃 봄과 그늘

어바웃 시리즈

 춥기 그지없던 3월 초의 추위가 지나고, 이제는 완연한 봄이 도래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벚꽃을 보기 위해 벚꽃 구경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아주 많지도 적지도 않은 평화로운 풍경과 딱 좋은 날씨는 학업과 과제에 허덕이는 대학생에게 한 줌의 힐링과도 같은 시간이었기에 기분이 매우 행복해졌다. 새삼 쾌적한 날씨와 쾌적한 풍경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꽃이 흐드러지는 봄의 시작을 벚꽃으로 맞이하며, 문득 과외 시간에 수업을 했던 한 시가 떠올랐다. 꼭 이맘때쯤, 3-4월이 개화 시기인 산수유나무에 관한 시이다.




사진 출처 '월간경남'


산수유나무의 농사

문태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뜨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이 시를 우리나라 내신에 맞추어 해석하면 그 나름대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과 약간 연합해 내 생각을 더하고 싶다.

 시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보통 우리가 잘 주목하지 않는 '그늘'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있는 것. 당연한 존재였던 그늘이 시인에게는 '나무의 한 해 농사'라는 결실로 재평가받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사진을 찍는 꽃은 하늘에 피워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져 무더운 여름날 사람들이 잠시 쉬고 갈 수 있는 휴식처요 숨 돌릴 틈이 된다.

 그렇다면 그늘은 왜 '농사'라고 불리우는 것일까. 이 시에서 시인은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수고로움을 언급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늘은 나무에게 또다른 결실을 맺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그늘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로 표상된다. 그늘을 만든다는 것은 조금 귀찮아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한 번 더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그늘은 나무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그늘 덕분에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다른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등 나의 수고로 만들어진 그늘은 언젠가 나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그늘은 나의 배려로 시작한 선순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는 주로 꽃에만 집중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나무에게는 다른 이를 위해 남겨주는 공간인 그늘도 존재한다. 이번에 벚꽃을 보러 갔을 때에도 작은 공원 속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쉬는 시간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이를 위해 남겨진 그늘에 대한 감사함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꽃에만 치중하기보다는, 묵묵히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수 있는 그늘을 농사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꽃이 흐드러지는 봄 속에서, 꽃의 아름다움으로 시작해 그늘의 수고로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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