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우리는 공부를 잘 한다면 명문대에 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 때의 공부는 학습인가, 학문인가?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학습을 좋아한다는 것일까,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학습과 학문에는 차이가 있는가?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 학습과 학문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 하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꽤 창창한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잘 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문제집을 풀고, 수업을 열심히 듣고, 복습하고, 다시 개념을 공부하고 문제집을 풀었다. 지엽적인 암기 능력을 요하는 내신 시험을 치루기 위해 시험기간에는 학교 복도를 빙글뱅글 돌면서 학습지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서 서술형에 선생님이 원하는 키워드를 다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와서 1년을 보냈다. 물론 대학교에서의 수업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난 이 경험이 소중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가지고 왔던 몇몇 패러다임에 맞서는 대항마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논문 읽는 걸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 논문이라면 무작정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초록부터 읽기가 겁이 나고, 글쓰기를 하기 위해 우선 그 자료인 논문을 왕창 다운받아 놓기는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논문은 몇 되지 않는다. 그냥 있어 보이는 각주와 참고 문헌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다들 정말 많은 논문을 읽고, 논문을 작성하고, 특히 졸업을 위해서 논문을 준비하곤 한다. 두 개의 글쓰기 수업을 들어 보았지만 아직 진정으로 학문적인 글쓰기를 잘 하는 방법을 잘 익히지는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어떻게 읽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논문을 읽는 것이 학문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논문을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리 글자가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고 논문의 '학구성'이 나를 자꾸만 위축되게 만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과목을 수강하면서 느낀 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가장 힘들어했고 저조했던 과목은 '대학 글쓰기' 과목이었다. 작은 레포트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소논문을 완성해내야 하는데, 어떤 주제를 선정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글을 쓰는 과정이 버겁게만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 내가 그랬듯이 여전히 교수님이 원하는 글을 써내려고 했고, 내가 원하는 글의 방향이 무엇인지 갈피를 잘 잡지 못한 채 끝난 것 같아 지금도 아쉽다. 나는 평상시에 매주 적어도 하나 이상의 글을 써내려고 하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학문의 영역에 서 있는 글쓰기는 나에게 아직 어렵기만 하다!
반면 내가 제일 재미있어 하고 성과도 좋았던 과목은... 그냥 통암기 과목이었다. 미술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달달달 외우는 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던 방대한 범위가 암기를 통해서 슬슬 내 머릿속에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정말로 즐거웠다. 그렇게 시대별로 핵심 사조를 익히고, 작가를 외우고 작품의 제목과 그 그림에 얽혀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는 과정은 팔이 좀 아프기는 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그리고 중국어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어 단어를 외우고, 본문 문장을 외우는 과정은 힘들기는 했지만 보람찬 시간이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나는 고등학교 때 소논문도 쓰고, 이것저것 활동한 것을 어필하며 나름 '학문'에 재능과 열의가 있는 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었으나,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ㅜ_ㅜ 대학교에 와서 비로소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학습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방은 나에게 '네가 잘 한다고 말하는 공부는 학문이 아니라 학습인 거 아니야?' 라는 답을 해 주었다. 사실 그때 이후로 내 뇌리에는 이 말이 꾸준히 박혀 있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러한 '학습과 학문'에 대한 고민은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을 설명해 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 때 나는 지식은 RNA, 지혜는 DNA와 같다고 답했었다. 이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식은 RNA처럼 한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완전하지 않고 DNA는 두 가닥으로 상보적으로 결합되어 있기에 비로소 안정화될 수 있다는 요지의 답변이었던 것 같다. 학습과 학문도 이 같은 비유가 통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나에게는 어렵기만 한 '상보적인 한 가닥'을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고 잘 해 왔던 것은 학습인 것 같다. 이제는 학문을 요구하는 과정 속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슬슬 드는 순간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