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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May 24. 2022

오늘은 아빠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다

"네, 아버지. 어디세요?"

퇴근길이었다. 어느 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나도 아빠한테 전화하고 싶다.'



아빠한테 전화를 그리 자주 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고 통화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30초에서 1분 정도 되었을까.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이유가 없도 한 번씩은 전화를 했다. 아이들은 전화하는 자체를 좋아했고 아빠는 둘째 아이를 보고는 해맑게 웃으셨다. 세상 무뚝뚝한 딸인 내게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었다.



아빠는 늘 "왜"하며 전화를 받았다. 다정하게 받는 것은 기대도 안 했다. 그래도 그렇지, "왜"가 뭐람. 래도 "여보세요" 정도는 해지 그랬어, 아빠.


"아빠는 왜 '왜'하고 전화를 받아?"

언제 한 번은 아빠한테 물어봤다. 예상했지만 이렇다 할 듣지 못했. 물론 그 뒤로도 쭉, 아빠는 한결같이 "왜"하고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진단을 받은 뒤부터는 전화를 자주 하게 됐다. 익숙하지도 않았고 습관도 되지 않았어서 의식적으로 려고 했다. 되도록이면 같은 간에. 어느 순간부터는 약속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화의 주제는 물론 '밥'이었다. 당시에 아빠한테 제일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다른 얘기를 할 생각은 못했다. 그저 식사를 얼마나 하셨는지에만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정식구들이 모이면 아빠 얘기를 할 때가 있다. 한참을 얘기하다 보면 한 번씩은 얘기 나온다. 저녁 먹고 대부분 맥주 한 잔씩을 같이 하는데 어쩌면 그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덤덤하게 보이는 그 시간이, 그 자리가 내게는 고맙고 감사하다.



엄마는 아빠가 멀리 여행을 간 것 같다고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말씀이 없으셨던 아빠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것 같다.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 막내에게만큼은 말씀이 많으셨었나보다. 30년을 넘게 몰랐데 얘기를 듣고 나니 새롭고 놀라웠다. 딸들과 아들에게는 이렇게나 다른 모습이셨다는 사실에 한 번, 아들과 케미도 있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말이다.



엄마는 아빠가 쓰던 번호로 전화를 해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전화를 받길래 모르는 척 물어보고 죄송하다며 끊으셨다고 했다. 감정이 교차했다. 정작 엄마는 무척이나 덤덤해 보였다.


정작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프사가 바뀌었길래 이제는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쓰는 번호가 되었구나 싶었다.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나서 퇴근길에 참느라 애썼다. 셔틀에서 내렸는데 포켓몬이 보이길래 애들 주려고 생각지도 않은 아이스크림을 왕창 사버렸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퇴근길에 무언가를 사들고 들어왔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아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봐야겠다.



보고싶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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