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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l 02. 2023

“돈 들어도 옷 좀 사” ... 면장님의 인생 조언

직장인 출근룩, 딱 정해드립니다.

☞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시리즈 전편 편하게 보기


평생도움 된 사무관의 조언

    

“퇴근 후. 회의입니다.” 불길하다. 6시 30분에 면장실(5급)에서 전 직원회의다. 회의 내용은 모른다. 동사무소와 같은 면사무소. 이 좁은 곳에서 무슨 비밀회의인가. 그것도 퇴근 후에.


“돈이 들어도 옷 좀 사 입고 하셔야 합니다.” 면장님 말씀이다. 뭐지. 공무원이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옷은 다 사서 입지. 빌려 입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 일은 16년 전. 내가 9급 신규 직원일 때 있었던 일이다. 시골 면사무소. 현장 나갈 일 많다. 산, 비포장도로, 논, 밭, 산, 하수도. 이런데 다니면 몸으로 때우는 일도 제법 있다.      


당연히 옷이 점점 편해진다. 토목직인 5급 면장님. 당연히 아신다. 그래도 우리 옷차림이 편해도 너무 편해 보였나 보다. 면바지에 티셔츠 정도였지만, 관공서 근무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으셨던 거다.   


면사무소엔 5급부터 9급까지 골고루 있다. 특이하게 우리 사무실만 9급이 절반이나 있었다. 9급이 많았으니 사무실이 알록달록했을 거다.      


공직자인 만큼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옷을 깔끔하게 입으라는 조언.


그분은 은퇴 직전 시청에서 4급 국장으로 근무하셨다. 복도에서 수첩을 한 손에 끼고 꼿꼿한 자세로 걸으셨다. 하위 직원이 슬리퍼 끄는 모습과 대비 됐다. 본인의 철학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그 사무관은 내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하시다. 나중에 4급으로 은퇴하시고 내가 6급으로 시장 비서일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났다.      


“니, 나 기억하니?”


주변 분들이 물었다.

“아니 갑자기 비서 군기 잡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제 초임 9급 때 첫 면장님이셨어요. 그때 공무원은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해라, 늘 깔끔한 모습을 유지해라. 말씀해 주신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4급 은퇴자분들이 그분을 무척이나 부러워하시며 말했다.

“이야,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잘 키웠네.”


단순했던 그 조언. 내가 공직생활에서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옷차림은 과학이다.     


바디랭귀지 전문가 또는 멘탈리스트라 불리는 토르스텐 하베너의 책 『생각을 읽는다』 에 나오는 이야기다.   


“흰색 가운을 입은 참가자들은 평상복을 입은 참가자들에 비해 읽기에서 실수를 절반 정도 적게 했다. 흰색 가운을 입는 것만으로도 참가자들의 능력을 개선시킨 것이다. 의사들은 지적이고 꼼꼼하다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되어서 가운을 걸치고만 있어도 그 순간 집중력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실험) 재킷을 입은 남자를 신고할 땐 주저하듯 의심했는데, 차림새가 후즐근한 ‘도둑’에 대해서는 거의 확신하는 의심이었다.”     
“옷차림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정신적 힘에도 영향을 준다.”     


옷이 자기표현, 자기만족?

꼰대들이 넘실대는 이곳에서?     


저 실험의 의미는 뭘까. 옷차림은 직장생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성패를 좌우하는 건 T.P.O.다.(시간, 장소, 상황)  

   

비서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집에 있던 카멜색 재킷을 입었다. 적당히 캐쥬얼하면서도 차려입었다는 느낌이 든다. 출근했다. 그리고.     


주말에 바로 대형 아웃렛에 갔다. 다크네이비 재킷을 샀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비서인 내가 제일 눈에 띄었으니까. 나 말고 전부 다 검정과 진한 네이비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럼 비싼 옷을 사야 할까? 아니다. Z세대는 1인분만 일하기로 정했다. 꼰대인 나도 1인분만 하고 싶다. Z세대는 오죽하겠는가. 갈수록 물가가 오르고 월급은 그대론데.      


출근용으로 비싼 옷을 산다? 1인분만 하러 오지 않았는가? 데이트하거나, 여행 가는 옷차림 이야기가 아니다. 출근할 때다. 옷은 자기만족인 것 안다.


하지만 1인분만 하러 온 직장에서 옷으로 자기만족을 할 필요가 있을까.     


자. 그럼 자기표현은 어떨까? 옷이나 액세서리는 자기표현 수단이다. 직장에서 자기의 표현이 필요할까?   

   

당신이 공무원이라면 혹은 그냥 사무직 직장인이라도. 꼰대 부대가 넘실대는 이 사무실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당신이 반 크리프 목걸이를 하고 와도
“이이~ 그거 우리 동네 금은방에 있는 거 아니여, 하나 산겨~”    
당신이 발렌시아가 신발을 신고 와도
“아고 우리 신입 월급이 즉긴 즉나벼, 어서 천조가리를 줏어와서 신고댕기네~ 다들 돈 좀 걷어봐”     


이런 취급. 안 봐도 뻔하다.     


스티브 잡스도 신경 안 쓰는데, 내가 뭐라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저 가상의 이야기는 사실 틀렸다. 직장에선 아무도 당신 옷차림에 관심 없다. 당신이 정말 T.P.O.에 맞지 않는 옷을 입지 않는 한.     


자기 업무를 보면 된다. 비서로 생활하며 국회, 정부청사를 다닐 땐, 나도 시골 공무원처럼 하고 다니지 않았다. 정장에 늘 셔츠를 입었다.  

   

대외 협력 업무처럼 늘 외부 주요 인사를 만난다면 조금 신경 쓸 필요는 있다. 그래도 특별히 비싼 옷을 살 필요는 없다. T.P.O.에 맞고 깔끔하면 된다. 고위 임원이 이 글을 보고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옷을 정해 놓아라. 책 『자신을 컨트롤 하는 초집중력』 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평균 70번 정도의 선택을 하거나 결단을 내린다고 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뭘 먹을지. 아침에 이런 선택을 줄이는 것이 일의 성과로도 이어진다. 선택과 결단을 되풀이할수록 의지력과 집중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는 우리라도, 그걸 따를 필요가 있다. 우린 돈 벌러 왔지 돈 쓰러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딱 정해준다.

직장생활에서 인정받는 가성비 옷차림     


지방 공무원 기준이다. 바지. 슬랙스처럼 딱 떨어지는 바지가 좋다. 50대 아저씨들의 힙합바지 같은 속칭 기지바지 입을 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참고로 등산복 브랜드 칸투칸에서 나오는 SP01 Z208 바지를 입는다. 등산복처럼 편하고 강한 재질이다. 겉으론 정장 느낌이다.


늘 뛰어다니던 비서 시절, 국회 다닐 때도 잘 입었다. 밥을 마시다시피 하다 흘려도 쓱 닦으면 된다. (본 리뷰는 칸투칸에서 협찬을 받고 싶습니다.)    

 

셔츠는 알아서 편한 것으로 입되, 다림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 시간을 아껴준다. 셔츠를 입어야 한다면, 언더아머 컴프레션 셔츠를 안에 입으면 좋다.


셔츠가 땀으로 수건처럼 되는 걸 방지해 준다. 야외출장이나 사무실 에어컨 절전 시, 셔츠 입은 상태에서 땀나면 대참사다.     


동사무소나 시청 공무원이면 유니클로나 탑텐 같은 스파 브랜드 기준으로 카라 없는 기능성 라운드 검정 티셔츠를 입어도 된다. 다만 카라가 없으면 예의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재킷을 늘 들고 다니거나, 사무실 의자에 걸어 놓아라. 재킷은 시청이나 동사무소에 근무하면 스파 브랜드에서 매시 재질이거나 세탁기에 돌릴 수 있는 편한 재킷을 사면 된다.  

   

누구를 만나거나 팀장, 사무관 결재받을 때만 입어라. 당신은 기능성 라운드 티셔츠를 입었음에도 항상 예의 차리는 직원이 된다.     


만약 꼭 정장이 필요한 업무를 본다면, 재킷만은 좀 좋은 걸 바지 색깔과 맞춰서 사라. 이 경우에도 꼭 자신의 월급을 생각해서 산다.


우리가 국제 비니스맨도 아니고, 돈 벌러 왔지 돈 쓰러 온 것이 아니다. 비싼 건 고위공직자나 임원이 됐을 때 사자.     


정치인들도 정장에 스케쳐스 같은 검정 운동화를 종종 신는다. 얼핏 보면 구두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에 가능하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포멀한 구두는 안 신어도 된다.      


포인트는 어두운색이다. 저렴한 옷을 사도 다크 네이비, 블랙을 사면 남성이 입기에 좋다.     


편하고,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히 예의 차린 느낌을 준다. 나는 저렇게 구성해서 일 년 내내 출근할 때 똑같은 모습으로 다닌다. 돈도 별로 들지 않고 직장에서 누굴 만나도 적정한 느낌을 준다.  


남자인 내가 여성분들 옷을 골라주긴 어렵다. 다만 꼭 당부하고 싶다. 비싸지 않은 걸 사면 좋겠다. 여성분들은 알아서 깔끔한 옷을 잘 고르실 거다. 다만 T.P.O.만 이야기하고 싶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생방송이 있어, 아나운서를 만났다. 아주 짧은 스커트를 입으셨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 어울렸던 거다.


시청 복도에서는 약간만 짧은 치마를 입은 직원을 봐도 흠칫하게 된다. 주변 상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돈 벌러 온 직장. 저렴하게, T.P.O.에 맞게.




사진: UnsplashNo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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