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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된 눈치

눈치는 감정의 언어이자, 세대가 남긴 생존의 기술이다.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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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는 감정의 언어이자, 세대가 남긴 생존의 기술이다.

눈치는 내게 하나의 감각처럼 박혀 있다.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표정부터 살핀다.

누가 기분이 좋은지, 누가 불편한지, 말이 오가기 전에 이미 감정의 결을 읽는다.

그때마다 내 몸은 본능처럼 반응한다.

눈빛을 맞추거나 피하고, 말의 톤을 조절하고, 분위기에 맞춰 미소를 만든다.

나는 대화보다 먼저 공기를 읽는 사람이다.

이 습관은 오래된 것이다.

내가 의식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돼 있었다.

엄마는 늘 아빠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 시절의 집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긴장이었다.

아빠의 발소리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졌고,

엄마의 말투 하나에 하루의 분위기가 결정됐다.

그 긴장 속에서 나는 감정을 읽는 법을 배웠다.

“화가 났다”라는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이해했고,

“괜찮다”라는 말보다 목소리의 떨림을 먼저 들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사람 앞에서 늘 예민한 어른이 되었다.

상대의 얼굴이 조금만 굳어도 마음이 흔들리고,

의견을 말하기 전에는 그 말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미리 계산한다.

그래서 갈등을 피하고, 대화를 돌리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한다.

사람들은 나를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 부르지만,

사실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미움받는 게 두렵고, 불편한 공기가 무섭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면 상황이 빨리 끝난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웠다.

한때는 이런 나를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은 착함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나는 언제나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대화에서 내 감정을 덮고, 의견을 삼키며, 나 자신을 보호한다고 믿지만

결국은 조금씩 말라가는 기분이다.

눈치의 근원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

불편함을 감지하고 먼저 사라지는 사람,

갈등이 생기면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미화됐다.

가정에서는 효녀로, 회사에서는 조율자로, 관계 속에서는 중재자로.

이런 태도는 세대를 건너 전해지며 하나의 생존법이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공기를 읽어야 안전했던 시대가 있었고,

그 시절의 사람들은 침묵으로 자신을 지켰다.

그 침묵이 지금의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표정을 먼저 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눈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눈치는 두려움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공감의 감각이기도 하니까.

다만 그 감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눈치가 아닌 이성이 선택하는 순간을 늘려가고 싶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괜찮다.

회의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일,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일,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의 주인이 된다.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유는 습관을 조금씩 흔들 수 있다.

눈치로 살아온 나날들 위에 이성의 문장을 하나씩 쌓아간다면,

언젠가 그 무게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눈치로 버티는 삶이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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