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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가 어려운 이유

미움받을 용기보다 어려운 건, 나를 미워하지 않는 용기다

by 지나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전 10_46_59.png


우리는 어려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배워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고, 갈등을 피하는 것이 성숙의 증거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건 두려운 일이다.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 곧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서서히 나를 지치게 했다.

나는 타인의 눈빛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고,

그들의 평가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결정됐다.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계산했다.

지금 이 말이 저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까,

이 행동이 나를 이상하게 보이게 하진 않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건 너무 어렵다.

그 용기가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개인의 감정보다 관계의 조화를 우선시한다.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칭찬받는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조율하며 산다.

솔직한 말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택하고,

불만보다 미소를 선택한다.

이건 생존의 기술이지만, 동시에 감정의 왜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어렵다.

그건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는 선언이 아니라,

‘내 감정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즉, 관계 속에서도 나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 주장 = 불편한 사람”이라는 등식을 배워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용기’는 불화의 씨앗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용기는 싸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 균형의 태도다.

그건 미움을 견디는 힘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다름을 받아들이는 성숙이다.


나는 오랫동안 미움받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그 덕에 많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중 일부는 나를 잃어버린 관계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나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작은 반발이 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하지?”


그 반발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건 누군가를 거부하기 위한 용기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기 위한 용기였다.


미움받을 용기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그건 매일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후에도

상대를 여전히 존중할 수 있는 여유다.


우리는 미움을 피하려다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살아가려면

그 미움을 조금은 견뎌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어른이 되어 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라도 —

“요즘 너 좀 달라진 것 같아.”

그 말에 웃으며 대답하고 싶다.

“응, 이제는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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