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괜찮다’는 말의 무게

괜찮다는 말은 견디는 사람들의 암묵어가 되었다

by 지나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6일 오후 03_27_14.png


“괜찮아요.”

이 말만큼 자주, 또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표현이 있을까.

누군가 미안하다고 할 때, 혹은 위로할 때조차 나는 습관처럼 대답한다.

“괜찮아요.”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면 어딘가 허전하다.

정말 괜찮은 게 아니라, 그 말로 감정을 덮은 기분이 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괜찮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며 자랐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래도 괜찮잖아”,

억울하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참아야지”,

속상하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 말들은 언제나 위로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실은 “그만해, 불편하니까”라는 다른 의미를 품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괜찮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불편한 감정이 오랫동안 머물면 주변이 불편해지니까.

사람들은 진심보다 분위기를 더 걱정했으니까.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나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동시에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었다.


문제는 이 말이 너무 쉽게 오해된다는 것이다.

나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괜찮다고 말했는데,

상대는 그걸 진짜로 괜찮다고 믿는다.

“그 정도면 됐지”, “마음 넓네”, “역시 참을성이 있어.”

그 순간 내 감정은 존재를 잃고,

나는 스스로 만든 ‘괜찮은 사람’의 이미지 속에 갇힌다.


이쯤 되면 ‘괜찮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안도하고,

누군가는 그 말을 이용한다.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성숙하다’, ‘이해심이 깊다’고 부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침묵이,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그리고 오래된 피로가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괜찮다’는 말은 사실 용기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기 위한,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한 조용한 결심.

하지만 그 용기가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 침묵을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한다.

그건 얼마나 잔인한 일일까.


진짜 용기는 소리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실은 괜찮지 않아.”

이 한마디를 꺼낼 용기,

그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사회적 언어 아닐까.


감정을 숨기고 미소 짓는 건 강인함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너무 오래 배워온 생존의 방식이다.

‘괜찮다’는 말은 관계의 평화를 지키지만,

그 평화가 나 자신을 소멸시킨다면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이제 가끔 솔직해지려 한다.

누군가의 “괜찮지?”라는 물음에

조심스럽게 “아니, 괜찮지 않아.”라고 대답해 본다.

그 말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이 숨 쉬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괜찮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 대신 진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괜찮다는 말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keyword
화, 목, 일 연재
이전 02화습관이 된 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