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을 읽으면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단 5분만이라도 엄마가 다시 와 준다면
정말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겠다는 절절한 그 말.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리운 얼굴 하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이상하게도
내 엄마보다 내 딸이 먼저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엄마 품에서 펑펑 울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억울하거나 속상한 날,
그 품 안에서 마음껏 말하고 울었던 기억도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조심스러웠고,
울음을 삼키는 쪽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때부터
마음이라는 걸 혼자 껴안는 법을
조금 일찍 익혀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내가 엄마가 되어
딸이 울면 먼저 안아주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 전에
그저 품 안으로 먼저 끌어안게 된다.
이건 내가 어릴 때 받았던 사랑의 반복이 아니라,
받지 못했던 위로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본능에 가깝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함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되길 바라는 마음.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 구절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언젠가 내 딸이 이 시를 읽는다면,
그 아이는 과연 나를
그런 엄마로 기억해줄까?
억울했던 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
엉엉 울어도 괜찮은 사람.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풀리는 사람.
나는 그 품이 되어주고 있는 걸까?
나는 따뜻한 품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자리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품이 되려 애쓴다.
기억 속에 없던 것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어버이날,
나를 품어주던 기억보다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어떤 엄마로 남을까.
떠올리는 것만으로
조금 울컥해지고,
그래서 더 오래 곁에 있고 싶어진다.
내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내 아이가 너무 그립지 않게,
너무 외롭지 않게,
그리고 너무 오래 울지 않게.
그런 기억 하나 남길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나도 언젠가 단 5분만이라도
휴가를 받아 다시 아이 곁에 올 수 있다면,
그저 조용히 안아주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안아주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