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당연함 속에 머문다

유치환 <행복>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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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시인의 「행복」은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품었던 사랑, 이영도 시인을 향해 보내는 수많은 글 중 한 편이다.
6·25 전쟁 때 불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도,
그가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만 5천 통이 넘는다.

이 시에 등장하는 우체국은,
그가 늘 이용했던 통영 우체국이다.
아마도 그날,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던 하늘 아래,
그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루 중 오직 이 시간만큼은,
마음을 가득 담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유치환이 이영도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중년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처자식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다만, 이영도를 향한 마음이 너무나도 뜨거웠던 것이다.

이영도는 남편과 사별한 후였지만,
그 역시 이 사랑이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뜨거운 표현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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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시가 품은 것

『행복』은, 그런 사연을 모르는 이가 읽어도
맑고 따뜻하게 마음을 물들인다.
숨겨진 이야기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 주는 시.

그리고 유치환 개인의 사랑 또한 아름답다.
그는 가정에 소홀하지 않았고,
부인에 대한 애틋함 역시 시 「안해 앓아」를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그는 흔히 말하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사랑이 많아, 사랑을 멈추지 못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낭만과 열정이 넘치는, 한 인간으로서.


아내의 사랑을 생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아마도 그녀는 쉽사리 미워하지 못했을 것이다.
표정 하나,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웠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조용히 아려온다.

분명 힘들었겠지만,
아내 권재순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치환을 사랑했다.
조용하고, 깊고, 흔들림 없는 사랑.
말로 다하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킨 그 사랑은,
아마 유치환에게도 삶의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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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사랑이 주는 힘

이영도에게 보낸 수천 통의 편지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지만,
권재순과 나눈 잔잔한 사랑은 쉽게 잊혀진다.
우리는 종종 당연한 것보다 특별한 것에 더 눈길을 준다.
그러나 진짜 소중한 것은 늘, 당연함 속에 숨어 있다.

당연히 존재하는 사랑,
당연히 곁에 있는 온기.
이 익숙하고 고요한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살게 하고, 지탱해 준다.

사랑은
당연한 것이기에, 더 아름답다.

오늘 하루,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 당연함 속에 조용한 행복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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