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기 전, 나는 나를 기다린다

김영랑의 <보란이 피기까지는>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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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 나의 봄은 조금 늦습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국어 시간, 선생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시를 읽으셨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처음 듣는 어휘들 사이에서, 유난히 그 구절만 또렷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그땐 기다림이란 말의 무게를 몰랐다.
좋아하는 것을 향한 조급함, 혹은 간절함 정도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삶에는 기다림이 너무 많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알아갔다.


모란은 생각보다 자주 마주친 꽃이었다.
공원 한 켠, 친척 집 마당, 골목 어귀의 오래된 화단.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다.


너무 커서, 너무 화려해서, 잠시 감탄하고는 스쳐 지나가기 바빴다.
그 꽃이 피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시는, 꽃이 피기 전을 말한다.
기다리는 그 시절, 보이지 않는 그 계절의 색과 온도에 대해 속삭인다.
김영랑은 봄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봄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차이가 오래도록 마음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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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이 시절, 나에게도 그런 하루가 있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순간이 결국 오지 않았을 때,
혹은 너무 짧게 스쳐가 버렸을 때,
그 남은 자리에 섭섭함이 조용히 고인다.
그 감정은 울지 않아도 충분히 무겁고,
지나간 계절보다 더 오랫동안 마음을 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다시, 기다림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봄은 언제나 우리에게 조금 늦게 온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마음 때문에,
때론 아직 스스로를 허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기다림은 슬프지만, 찬란하다.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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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도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모란이 피기까지의 날들을,
나의 봄이 천천히 도착하기를.





처음 이 시를 만났던 중학생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기다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그러나 기다림 끝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온다는 믿음도 함께 배우게 되었다.
이 글은, 그런 내 마음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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