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나를 지나, 다시 나에게

서안나의 <곡선의 힘>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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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내려오던 길,

시인은 곡선으로 휘어진 커브를 만난다.


잠깐, 차가 기울고
세상이 한쪽으로 무너지는 듯한 그 순간,
몸이 쏠리고
풍경이 중심을 잃는다.


그 커브 속에서
시인은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삽시간에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고
자신 안의 질서가 깨진다.


나도 그런 순간을 안다.
평범했던 하루의 한순간,
불쑥 무너지듯 스스로에게서 멀어지는 감각.
아무 일도 아닌 듯 시작됐는데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쪽으로 무너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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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버틴다.
모서리처럼 몸을 세우고
흔들림에 맞서려 한다.


시 속의 나는 중심을 붙잡으려
손끝으로 온몸을 끌어당긴다.

‘나’라는 테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움켜쥐려다
오히려 나를 쏟아내고 만다.


나에게서 내가 이탈된다

이 말은 어쩐지,
무너지는 것보다 더 깊은 고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커브를 도는 몇 초 동안,
되돌아오는 길이 있다.

나의 경계를 넘어서고

슬픈 배후까지 스치듯 엿보게 되는 그 시간.
그건 내 안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찰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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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였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잠시 멀어졌기 때문에
되돌아오는 길이 선명해졌다.


곡선을 따라 되돌아오는 길,
그 부드러운 휘어짐 안에서
나는 아주 잠깐,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내면을 마주했던 것 같다.


부서질 듯 휘청이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무너지지 않으려는 힘보다
돌아오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휘청이는 건 약한 게 아니었다.
그건 다시 나에게 되돌아가기 위한
한 번의 커브였을지도 모른다.
이탈의 순간조차
나를 향한 여정 속에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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