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다.
양육이 부담스러워서도, 아이를 싫어해서도, 둘만의 삶을 즐기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는 꼭 있어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겼고 우리는 그대로 기뻐했다.
그리고 남편은 단번에 말했다.
“분명 딸일 거야. 그것도 엄청 예쁜 딸일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하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남편은 ‘딸’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꿨던 태몽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꿈속에서 나는 리어카 노점상에서 가방을 하나 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서 다시 할머니에게 가져갔더니,
그분은 깜짝 놀라며 “이건 잘못 드렸네요” 하고는 리어카 뒤편,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가방 하나를 꺼내 내게 안겨주었다.
그건 정말 세상에 하나뿐인 눈부신 하얀색 명품 가방이었다.
그 빛나는 하얀색, 그 귀한 느낌에 너무 좋아하며 잠에서 깼고, 그게 태몽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바로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딸아이는 뱃속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예정일보다 2주 먼저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가족 분만실에서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남편은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우는 소리까지 이렇게 예쁘지?”
그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청소년이 된 지금도, 딸을 볼 때마다 남편의 입꼬리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다.
신생아 시절, 남편은 육아휴직을 내고 딸을 돌봤다.
6개월 동안 매일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유모차가 있어도 굳이 아기띠를 하고 안고 다녔다.
낮과 밤이 바뀐 데다, 안아 흔들지 않으면 금세 깨던 예민한 아이를 품에 안고 밤새 졸며 흔들어 주던 그 모습.
그에게 딸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남편에게 딸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래도 애기가 먼저야.”
내가 먼저라고 말해도, 사실 나는 안다.
남편에게 딸이 먼저인 순간도 많다는 걸.
그게 전혀 서운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함께할 수 있지만, 딸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존재니까.
같은 공간에 있는 지금, 마음껏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을 나도 너무 잘 안다.
남편은 드라마 속 관식이처럼 딸을 사랑한다.
딸이 한 번 좋아한다고 한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 오고,
똑같은 요리를 해주며 또 좋아하고,
비슷한 걸 보기만 해도 “우리 ** 생각난다”며 그걸 사온다.
딸에게 필요할 것 같으면 미리 준비해놓고,
딸이 “아빠, 너무 과해”라고 해도 남편은 같은 ‘사랑스러운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라며 말은 하지만,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그의 사랑 표현 방식이니까.
그래서였을까.
곧 성인이 될 딸은 아직도 아빠와 손을 잡고 다닌다.
아빠를 보면 조잘조잘 이야기를 쏟아내고,
서로 꼭 껴안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으며 말하곤 한다.
“우리 **는 참 좋겠다.
아빠 같은 아빠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