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20년 중순에 입대해 정비병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김요셉 씨는 주변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용사이다. 리더십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분대장으로 활동 중이며, 사회인 시절에도 다부졌던 체격을 꾸준한 단련으로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다. 10대에는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다. 모두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회의 일부가 되는 것이 싫었다. 일부러 짝짝이 신발을 신었고, 펜 대신 트레이를 들었다. 방황 끝에 행복의 조건을 찾고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기로 한 그의 꿈은 '제2의 박새로이'다. 학벌이나 폭력으로서 형성되는 권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가게를 꾸려나가는 것이 목표이다. (본 인터뷰는 2021년 4월 13일에 진행되었다.)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군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는 김요셉입니다. (웃음)
정비병은 정확히 어떠한 일을 하는 병과인가?
차량부대정비 특기와 그냥 차량정비 특기가 있는데, 차량부대정비의 경우 민간인 아저씨들과 함께 차량을 고친다. 나는 차량정비 특기라서 예방 차원의 검차나 점검, 오일 교체 등의 일을 한다. 차량을 수리할 때도 (수송) 반장님을 보조해드린다. 굳이 세 글자로 이야기하자면 점검병? 점검 작업도 혼자 한다기보다는 운전병들과 함께 맞춰간다. 운전병들이 일차적인 점검을 하고, 특이사항이 있거나 필터 교체 주기가 되면 내가 추가로 확인하는 식이다.
하루 작업량은 얼마나 되나?
정비병의 정비 작업은 월간 정비, 반년 정비, 연간 정비,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한 차량당 한 달에 한 번, 반년에 한 번,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점검을 한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아무런 작업을 안 하기도 하고, 종일 죽어라 고생해도 퇴근을 못 하는 날 또한 존재한다. 하루의 작업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보병보다는 업무량의 편차가 큰데, 일이 힘들지는 않나?
다들 편히 쉬는 와중에 혼자 작업하고 있을 때는 내가 왜 정비병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연병장에서 타 중대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편히 일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단순한 것 같다.
김요셉 씨가 정비병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입영 신청을 할 때 신청 가능한 주특기를 살펴보다가 정비 병과가 눈에 들어왔다. 박격포나 자주포를 드는 것보다는 편할 것 같아, 무작정 신청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비슷한 일을 해본 적도 없고, 훈련병 때 정비 관련 작업을 배운 것도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 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쉬는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해가며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갔다.
정비병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정비 작업이 너무 생소하다 보니 반복적으로 배워도 작업이 손에 익지 않았다. 열을 배우면 비로소 하나를 알게 되는 느낌이더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아가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그렇게 힘든 일을 여태까지 해온 원동력은 무엇인가?
선임과 상급자에게 칭찬받거나 나 자신을 인정받을 때, 정말 행복했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군 생활을 열심히 하게 만들었다. 다만 잘해서 칭찬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일을 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의 김요셉 씨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남들과 똑같이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일탈을 했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는 대신에 주유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린 나이에 맛본 돈의 맛은 달콤했다. 몇 줌 안 되는 용돈에 쩔쩔매는 게 아닌, 땀 흘려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는 생활이 즐거웠다. 20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많은 돈을 만져보기도 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의 노동은 즐겁지 않았다. 모든 것을 뒤로 미뤄놓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진로를 탐색했다.
97년생이 20년 6월에 입대했으면 빠르게 군대에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중3 때부터 일을 했다. 학교도 잠시 그만뒀고. 남들보다 빠르게 사회 경험을 한다는 점이 좋았고, 일하는 게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공부 대신 일을 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이르게 사회에 나오게 돼서, 정말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했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고민하다가 한 곳에 1~2년 정도 정착했다. 내 꿈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제야 입대하게 됐다.
무슨 일을 꿈으로 삼게 됐던 것인가?
요식업이다. 20대 초반에 질이 안 좋은 곳에서 일을 했다. 돈이야 남들보다 많이 벌었지만, 정신이 너무 피폐해지더라. 그런데 장사를 하는 것 자체는 재미있었다. 조금 더 밝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술집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예전보다 수입은 적어졌지만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자영업을 내 꿈으로 삼아야겠구나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선 군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이제 절반 조금 넘게 군 생활을 했다. 그간 느낀 점이 있나?
사회에서 왜 군필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다. 지금은 전역한 선임들을 떠올려보면 사회에서 알고 지냈던 미필자들에 비해 의젓한 면이 있다. 군 생활을 해나갈수록 어른스러워지는 게 눈에 보인다.
사회로 돌아갈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미래 진로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 법하다.
처음부터 장래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군대에 오니, 빨리 전역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공감되지 않더라. 나는 이곳 군대에서 나가는 것이 '탈출'이 아닌 '재시작'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도 일은 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말출 때 사용할 휴가를 모으기보다는 지금 많이 사용하게 된다.
사회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늦게 입대한 사람들 중에서는 군대에서 쉬다가는 느낌으로 지내기도 한다더라.
아 진짜? 내가 딱 그런 경우 같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일을 해왔다 보니 작업이 힘들지도 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내니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사회에서는 내 간수를 오롯이 스스로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군인으로 지내는 동안에는 정신적인 면에 있어 케어를 받는 것 같다. 모든 점이 다 좋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내적으로는 입대 전보다 더욱 건강해졌다.
남은 군 생활 동안의 목표는 무엇인가?
전문하사의 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말과 너무 모순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군대가 내게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12월 1일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갈 김요셉에게 한 마디 남겨달라.
요셉아! 비트코인 사라... 전재산으로 매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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