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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나의 이야기

by 채성실

수능을 준비하는 동기가 있었다. 아직 자신의 위로 눈치 봐야 할 선임들이 한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부 시간을 확보하겠다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공부를 하곤 했다. 매일 밤 불침번에게 새벽 3시에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제아무리 계원이라서 일반 소총수에 비하면 몸 쓸 일이 적을지라도 취침 시간을 세 시간씩이나 포기하는 데는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 동기는 그런 각오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했다. 심지어 수험 공부를 할 때조차 일찍 일어나기는커녕 밤늦게까지 공부한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대단했고, 인제 와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편입 준비를 하는 선임이 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일과 시간을 쪼개, 기어코 공부 시간을 만들었다. 모두가 스마트폰 삼매경인 개인 정비 시간에는 상급 부대 혹은 국방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을 준비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운동도 하고,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 신경이 예민해질 법한데도 늘 웃는 낯으로 다녔다. 결국 편입에도 성공하고 공모전에서 입상해 몇만 조회수짜리 브이로그 영상도 찍었다. 온몸으로 군인의 한계를 부정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밤 연등 시간마다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일본어 공부를 하는 동기가 있었다. 입대 전부터 일본어에 흥미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단다. 운동하는 것도 좋아했던 그는 집에 가기 전날까지 쇠질을 했다. 조금 늦게 입대해 중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햄'이라고 불리는 형이 있었다. 동기가 상관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성큼성큼 나아가 한마디 하는 사람이었다. 뒤에서 구시렁대기만 하던 자신이 창피했고,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래퍼를 꿈꾸며 너덜너덜한 공책에 꿋꿋이 가사를 적어 내려가는 동기가 있었다.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 동생이 있었다. 넌지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안경잽이가 있었다…. 사회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지난 18개월 동안 많이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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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많이도 바뀌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번도 진득하게 써본 적 없던 일기를 훈련소 입소일부터 집 가는 날까지 끄적였다. 나름 두꺼운 스프링 노트 세 권을 끝장내고 네 권째도 거의 다 채웠다. 집 가기 직전까지도 동기들에게 장난기 머금은 놀림을 받았다. 취침 시간이 되어 소등을 했는데 라이트펜 불빛에 의지해 일기를 쓰는 모습이 퍽 이상해 보였단다. 웃어넘기면서 볼펜 리필심 수만 원 어치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문예창작과 실기를 준비했을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필사도 다시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곧바로 공책을 펴고 그대로 배껴 썼다. 필사용 노트를 따로 마련했는데 이것도 어쩌다 보니 두 권이 넘어갔다. 스프링 공책 두 권을 필사로 빼곡히 메우기 위해 마흔 권의 책을 읽었다. 2017년 겨울 이후 완전히 잃어버렸던 글쓰기의 자신감을 얻어, 몇 년 만에 소설 한 편을 소박하게나마 끄적이기도 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데 머릿속에 든 것이 너무나도 없었다. 길어봤자 16000자 조금 넘는 습작 하나 완성하겠다고 1년에 많아 봐야 한두 편 보던 영화를 50편이나 봤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동기에게 추천도 받았다.

그러니, 덕분에 정말 많이도 바뀌었다. 그놈의 대학이 뭐라고 밤잠 줄이고 촉박한 시간을 쪼개가는 이들을 보며, 나도 참 이게 뭐라고 손 가는 대로 글을 썼다. 일단 질러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군 생활 동안 조금씩 싹틔웠던 이러한 생각을 담아, 지난봄부터 초가을까지 여섯 명의 군인을 인터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이며 주저앉으려 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②] "군대가 사람 두 번 살렸죠" 배차계원 안홍준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③] '군대가 만들어낸 A급 용사' 버스 운전병 이준혁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④] '꿀보직일줄 알았지만...' PX병 곽도엽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⑤] "미래에 대한 여러 갈림길이 생겼다" 통신병 권범수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⑥] "군대에서 도전을 배웠다" 대대 인사계원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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