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군대가 사람 두 번 살렸죠" 배차계원 안홍준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②]

by 채성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운전병으로 입대했던 안홍준 씨는 직장에서 사무 업무를 봤던 경험을 살려 배차계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엑셀, 인터넷 창을 대여섯 개씩 띄워놓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이제 부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입대 전부터 군인이 되어서까지 사무원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취미는 애니메이션 모델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닐 때도 퇴근 후 새벽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매달려 모델링을 제작하곤 했다. 비록 군인이 되고 나서는 여건상의 문제로 잠시 모델링을 그만뒀지만, 어려서부터 시작한 사회생활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재도약의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본 인터뷰는 2021년 6월 11일에 진행됐다.)


처음 입대할 때는 운전병 주특기로 신청했던 것인가?


그렇다. 처음에는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병 모집 신청을 했다. 막상 자대에 와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다른 운전병처럼 야수교에서도 계속 운전 교육을 받다가 왔나?


남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았고, 면허증도 있다.


운전병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다른 주특기를 부여받은 용사들보다 오랜 기간 훈련병 시간을 보내지 않나.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소형 차량을 운전하려는 운전병은 2주, 중형 차량은 4주, 대형 차량은 5주 동안 교육을 받는다. 나 같은 경우 중형반을 나와서 훈련소 기간까지 총 9주 동안 훈련병으로 지냈다. 모든 군인들이 공감하는 훈련병 시절의 힘든 점 중 하나는 이름이 아닌 '000번 훈련병'이라고 불리는 것일 테다. 야수교에 가면 훈련병 대신 교육생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교육생이라는 호칭이 어색해서 조교가 나를 불렀을 때 "훈련병 000!" 하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 외 힘들었던 것은 바로 자대에 간 동기들과는 달리 휴대전화도 바로 못 쓰고, 조교들과의 생활이 어려운 정도였다.


일반 병과보다 긴 훈련병 생활을 했던 만큼 자대에 왔을 때 들뜬 감정도 컸을 듯한데.


그렇다. 처음 야수교에서 배출되었을 때 바로 자대에 가겠구나 싶어서 전투복 각도 예쁘게 잡고, 전투화도 열심히 광을 냈다. 선임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야수교를 수료했다고 해서 바로 자대에 가는 게 아니었더라. 보충대에 가고, 내가 상급 부대에 가고, 또 다른 곳에 갔다가 겨우 어느 부대에서 지낼지 배치를 받고...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마침내 자대에 와서는 두돈반 핸들 대신에 키보드를 잡게 됐다.


처음 자대에 왔을 때 배차계원으로 일하던 선임이 전역까지 두 달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후임자가 필요했는데, 후보로 거론되던 세 명 중 두 명은 운행도 나가는 등 어느 정도의 기량을 올린 상황이었다. 나는 갓 부대에 온 신병이었고, 밖에서 사무 업무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배차계원이 되었다.


오랫동안 운전 교육을 받다 왔던 만큼 배차계원이 되었을 때 허탈함이 있었겠다.


운전을 하기 위해 야수교까지 거치기는 했지만, 운전을 못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운전병 신병들은 운행 전까지 작업에 많이 투입됐지만, 나는 행정업무를 봐야 해서 그런 것들로부터 많이 열외가 되었다. 몸이 편하고 작업도 없이 행정 업무만 보면 되니까 신병 때는 좋았다.



안홍준_2.jpg (배경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배차계원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전역한 같은 회사의 형도, 주변 선임들도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해줬다. "배차계원? 괜찮지." 안홍준 씨에게 배차계원을 하면서 좋다고 느낀 점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좋았던 점은... 딱히 없었다." 작업에서 열외되어 컴퓨터를 만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편하지만, 홀로 부대의 모든 배차를 책임지는 것은 상당히 외로운 일이었다. 그를 위로해준 것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행정병을 배려하는 따뜻한 목소리였다.


배차계원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보직인가?


부대의 배차를 전부 관리하는 일을 하는 보직이다. 특정 차량의 배차가 나 있지 않으면 그 차는 운행을 나갈 수 없다. 만약 다음 날에 사격이나 교육 훈련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를 위해서는 그 전날 국방망을 통해 미리 용사들을 수송할 차량의 배차 신청을 올려야 한다.


부대의 모든 차량 관리를 배차계원이 한다.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차량이 많아서 힘든 것은 수송 반장님과 운전병, 그리고 정비병들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운전병이 적으면 적을수록 힘들다. 가용 인원은 2~3명밖에 안 되는데 4~5대의 차량 운행이 필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인원들이 네다섯 번의 운행을 나갈 수 있도록 타임테이블을 짜야 한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운전이 가능한 간부님들께 전화를 돌려 운행이 가능한지 알아봐야 하고. 그래서 차량이 많냐 적냐 여부와는 상관없이, 운전병이 적을 때가 가장 힘들다.


배차계원이라는 보직 자체의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일하는 것에 비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적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대의 계원들은 행정반에서 지내다 보니 간부님들께서 해당 용사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신다. 그런데 수송부는 중대와 따로 떨어져 있어 중대에서 배차계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수송 반장님께서도 교육과 정비, 운전으로 바쁘시기 때문에 나를 케어해주시기 어렵다. (외딴곳에 있는 고독한 행정병?) 그렇다.


배차계원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있나?


혼자서 일하고 사무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로웠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가끔씩 전화로 배차 신청을 하는 간부님들이 상냥하게 말씀해주실 때, 그리고 다른 행정병들한테 전화했을 때 곱게 답변해줄 때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웃음)



img.jpg 고교 시절 안홍준 씨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작성했던 콘티,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만든 작업물.

고등학생 시절 안홍준 씨의 꿈은 애니메이터였다. 친구를 따라 들어갔던 애니메이션 기능반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주변인들이 수업 시간에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을 때도 홀로 '마야(Maya,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를 만졌고, 2학년 들어 교육의 인프라가 갖춰지자 모델링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꿈꾸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사회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다가 왔나?


전기 관련 공장에서 반 사무직·반 현장직으로 일했다. 엑셀도 조금 만지고 한글 프로그램도 다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들어갔나?


그렇다. 원래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것은 정보·통신 계열이었지만 일자리가 없다 보니 학교에서 입대 전 다녔던 공장을 추천해줬다. 전기과 애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곳이라더라. 그래서 신청했는데 바로 붙었다. (웃음)


청소년 때부터 장래 직종을 전기 쪽으로 잡았던 것인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3D 애니메이션을 다뤘고, 장래 희망도 애니메이터로 잡았다. 기능 대회에 나가 4등도 한 번 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 됐다. 그사이에 다른 애들은 다 취업에 성공했고. 그래서 전기 쪽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느 정도 일하다 왔나?


정확히 2년 다녔다.


2년 동안의 직장 생활은 어땠나?


첫 1년은 재미있게 다녔다. 그런데 2년 차부터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평일에 놀러 다니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도 하며 청춘을 누리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퇴근하고 나서 집에 오면 오후 8~9시가 되니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다.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한 일상을 2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원래 꿈이었던 3D 애니메이터를 계속 밀고 나갔다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나?


그렇다. 그래서 취업하고 나서도 첫 1년 동안에는 퇴근 후 매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도 작성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라. 나중에는 '1년만 더 일하고 군대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군대에 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


딱히 계기는 없었다. 군대에 정말 오기 싫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 아닌가. 먼 미래에 대한 인생의 계획보다는 코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대했다.


항상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눈앞의 일을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갔다던 안홍준 씨는, 요즈음 들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전투복을 입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한 번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던 운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뜻은 없었으나 최근 들어 자격증 하나쯤은 따서 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전역하고 나서 다시 직장에 들어갈지, 그간 모았던 돈으로 다시 한번 입시에 도전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직장 생활 동안 점차적으로 피폐해졌던 정신 건강의 호전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꼽는다.


군대에 갓 왔을 때는 전역 후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없었다. 다만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한다. 전역 후 전에 다니던 직장을 다닐지, 아니면 모아둔 돈으로 대학에 갈지 계속 고민 중이다.


군대에 와서 가장 변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전부터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 홀로 해야 하니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런데 자대에 와서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다 보니 혼자서 운동 계획을 짜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다. 원래 안 하던 운동이다 보니 몸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도 보인다. 스스로 '이것 하나만큼은 잘하고 있다', '좋은 거 하나 배워간다'라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 안 왔으면 여태까지 하지 않았을 공부도 시작했다. (어떤 공부를 하는 중인가?) 정보처리 산업기사를 공부 중이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하고 있길래 산업 기사 자격증 하나쯤은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하고 있다.


입대했을 때는 단기적인 목표만 봤다고 했는데, 지금은 달라진 점이 있나?


지금도 똑같다. 먼 미래에 대한 플랜보다는 가까운 일에 대한 생각밖에 안 하는 것 같다. 원래 다녔던 직장에 다시 들어가서 대충 용돈벌이나 할까, 아니면 대학이나 갈까? 둘 사이를 놓고 고민 중이다.


지금도 대학은 예전과 같은 방향으로 생각 중인가?


그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수시에 떨어지고 나서도 취미로 계속 모델링을 해왔다. 친구들끼리 아바타도 만들어보고, 액세서리 그래픽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한동안 안 하다가 해도 재미있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직장생활을 용돈 벌이로 의식하고 있다. 스스로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직종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그 부분은 확신을 못 하겠다. 지금의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델링을 업으로 삼아도 그것을 직업으로 했을 때 행복할지 알 수 없다.


지난번에 인터뷰를 했던 김요셉 씨는 군대가 인생에 있어 마지막 휴가라고 이야기했다. 입대 전까지 일을 해왔고, 나가서도 일을 해야 하니까 그렇단다. 비슷한 인상을 받았을 것 같다.


공감한다. 퇴사 전 2~3달 동안에는 우울증이 엄청 심해져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군대를 이유로 퇴사하게 되었을 때 정말 좋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쉴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군대가 사람을 두 번 살렸다고 생각한다. 그때 퇴사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막상 군인이 되니 남들은 모두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 혼자 이곳에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군대가 마지막 휴가라는 말에 전적인 동의는 못 하겠다.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바뀐 점이 있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바뀌었다기보다는 환경과 자신의 의지에 의해 변화됐다고 생각한다. 평생 글을 읽는 것 자체를 관심도 없던 사람이 군대에 오니깐 책도 읽고, 운동도 환경이 받쳐주니 하게 됐다. 군대에 와서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도움을 받았던 기억은 있다. 갓 전입오고 나서 힘들어할 때 수송반 동기가 나를 끌고 다니면서 챙겨줬다.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전역까지 6개월 정도 남았다. 남은 군 생활 동안의 목표는?


운동이라는 취미이자 습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전역하고 나서도 꾸준히 운동을 해서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홍준에게 군대란?


시간 낭비. (웃음) 시간 낭비라고는 했지만, 좋은 취미도 많이 얻게 해주고 정신적으로도 좋은 휴식처가 됐다.


마지막으로 올해 12월 15일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갈 안홍준 씨에게 한마디 해달라.


회사에서도 2년 동안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군대에서의 1년 6개월도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빠르게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아. 1년 6개월 동안 고생했고, 나가서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③] '군대가 만들어낸 A급 용사' 버스 운전병 이준혁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④] '꿀보직일줄 알았지만...' PX병 곽도엽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⑤] "미래에 대한 여러 갈림길이 생겼다" 통신병 권범수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⑥] "군대에서 도전을 배웠다" 대대 인사계원 이승원

keyword
이전 02화'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