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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도전을 배웠다" 대대 인사계원 이승원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⑥]

by 채성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②] "군대가 사람 두 번 살렸죠" 배차계원 안홍준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③] '군대가 만들어낸 A급 용사' 버스 운전병 이준혁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④] '꿀보직일줄 알았지만...' PX병 곽도엽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⑤] "미래에 대한 여러 갈림길이 생겼다" 통신병 권범수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대대 인사계원으로 1년 6개월을 보냈던 이승원 씨는 본래 기간병으로 지원했으나 자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할 것을 명받았다. 그야말로 모든 미필 남성들과 훈련병이 부러워할 만한 사례다. 하지만 이승원 씨는 쾌적한 환경 속에서 별다른 육체적 노동 없이 일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행정병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입대 전까지의 자신을 '매일 놀고 마시는 대학생'이었다며 쓰레기 같았다고 일축한 그는, 자대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이들과 하고픈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을 만나며 미래를 바라보게 되었노라고 회상했다. (본 인터뷰는 2021년 8월 29일에 진행되었다.)


■ 행정병 됐을 때 머릿속에서 '아이유 - 에잇'이 재생됐지만...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군대에서 흔히 '신의 보직'이라 불리는 행정병을 맡고 있는 대대 인사계원이라고 합니다.


행정병은 어떻게 됐나?


자대 배치를 받고 부대에 오니까 간부님께서 나더러 대대 인사 계원이라고 했다. 소총수로서 훈련소에 입소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정병이 됐던 것이다. 부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격포병이 될 줄 알았다. 당시에 박격포병을 많이 뽑기도 했고, 함께 이 부대에 온 동기 6~7명도 박격포를 들게 됐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좋았다. 훈련소에서 흔히 말하던 꿀의 보직이 행정병 아닌가. 모든 이들이 하고 싶고, 일체의 훈련 없이 시원하게 에어컨이나 쐬는 조직! 입대하기 한 달 전부터 매일 밤 '제발 행정병 시켜주세요' 하고 빌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 행정병이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진짜 좋았다. 아직도 행정병이 된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여단 본부에서 자대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인사 담당관님께서 "어? 여기 대대 인사 계원 한 명 있네?"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그가 나를 행정병이라고 호명해준 순간 머릿속에서 아이유의 '에잇'이 자동재생 됐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현시점에서는 대대 인사계원이 어떻나?


음... 우선 행정병이라는 보직이 휴식 보장을 못 받는다.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승원 씨를 인터뷰했던 2021년 8월 29일은 일요일이었다) 처음 맞후임이 들어왔을 때 이렇게 해줬던 말이 있다. "일의 난이도 자체는 쉽다. 한 달이면 충분히 숙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일이 너무 많다." 각 중대 행정병도 그렇고, 이곳의 계원들도 그렇고 솔직히 일이 엄청 많다. 그런 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많다. 지금까지 겪어온 대대 인사계원은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다른 보직보다 훨씬 힘든 그런 주특기다.


대대 인사계원은 어떤 일을 하나?


대대의 모든 인사 업무를 본다. (예를 들면?) 장병들이 휴가, 외출 등으로 출타를 하면 이를 상급 부대에 보고해야 한다. 누가 휴가를 나가 있고, 누가 출발했으며 부대로 복귀하는지 등을 매일 파악해야 한다. 부대의 출타 계원을 모두 파악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각 중대의 병력 현황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 외에도 많다. 진급, 명령, 보직, 등의 인사를 모두 인사계원이 담당하는 것이다.


일과에 대해 말해달라.


일과 시간이 돼서 출근하면 각 중대로부터 출타·병력 현황 등을 보고 받는다. 이를 종합하는 도중에는 간부님들이 "이것 좀 해줄래?" 하고 주는 일을 한다. 양이 많아서 하루 만에 끝내지 못하는 작업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틈틈이 해야 하고.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숨 돌릴 틈이 없다. 퇴근할 때까지 주야장천 인사 업무를 하는 것이다. 사실, 일과시간 안에 일이 끝나는 날이 거의 없다.


대대 인사 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사수가 전역하고 홀로 대대의 모든 인사 업무를 떠맡았던 올해 초가 너무 힘들었다. 당시에는 아직 인사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서투름이 있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 또한 심했다.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나도 많이 예민해졌다. 동기가 내게 가볍게 장난을 쳐도 '왜 나를 건드리지? 내가 만만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고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대 인사계원으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보직이 나와 정말 잘 맞았으니까. 밖을 돌아다니며 몸 쓰는 일을 싫어하는데 그런 점에서 행정병이 내게 딱 맞는다. 그래서 힘들다며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대대 인사계원으로 전역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 도전을 두려워했던 나, 이제는 도전을 꿈꾼다

"어차피 군대에 가야 하는데 왜 큰 일에 도전해야 하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전역하고 나서는 도전을 앞두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입대 전의 이승원은 어떤 사람이었나?


쓰레기!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쓰레기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매일 부모님 돈으로 술 마시며 놀고, 목표 의식 없이 살았으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20대 초반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 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무엇이었나?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 모든 일에 대해 '어차피 군대에 가야 하는데 왜 그 일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군대는 내게 있어 커다란 벽이 있고, 그 벽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 싶어서 신청하게 됐다.


군대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있나?


편입이었다. 편입 준비를 하다가 왔으니 군 복무 기간 동안 편입을 마무리 짓자고 마음먹었다.


군대에서 사회에서는 볼 일 없는 유형의 사람을 만나며 변화한 점이 있나?


이곳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것이 내게 큰 자극이 됐다. 앞서 말했듯이 입대 전에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도전을 회피했다. 그런데 입대하고 나서 자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을 깨달았다. 개인 정비 시간에 쉬면서 노는 대신 수능 공부에 매진하는 동기도 있었고, 편입에 성공했던 선임도 있지 않았나. 그런 모습들을 보며 어느 환경에 있든 노력만 하면 이뤄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도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던 것이 이곳 군대에서 유일한 수확이다.


자신도 자극받아서 무언가를 도전한 것이 있나?


우선 최근 들어 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도전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전역하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매일 도전하기 전에 많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내가 걸어가려 하는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정말 이 선택을 하는 게 잘하는 짓인가' 하는.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역하고 나서는 그런 시간이 확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입대 전에는 고민의 단계가 5단계였다면, 이제는 2단계?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바뀐 편견이 있나?


저번에 정작과장님과 갈등이 있었다. 인사·참모 계원들의 대우와 관련해 견해 차이가 커서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했다. 그러다가 정작과장님과 나, 그리고 작전병 셋이 모여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군대에 와서 이런 사람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을 느꼈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고, 또 그런 말을 타인에게 듣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과장님께서 딱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 "사람은 살면서 맞는 일이 있고 그른 일이 있는데, 모든 것은 너가 좋아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적잖이 충격받았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줬으니까. 그날 밤이 바로 사람에 대한 편견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 군 생활에 대해 느낀 점이 있나?


좆같았다. 좋게 포장하기에 군대는 너무 힘든 곳인 것 같다. 처음으로 탈모도 오고, 대상포진도 걸려보고... 살면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절이었고 다시는 하기 싫은 경험이다. 그래도 이 군대 덕분에 어느 정도 나잇값을 하는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10월 18일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예비역 병장 이승원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네가 10월 18일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생각한 대로만 움직여준다면 옛날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당장의 즐거움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생각했음 좋겠어.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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