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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만들어낸 A급 용사' 버스 운전병 이준혁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③]

by 채성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②] "군대가 사람 두 번 살렸죠" 배차계원 안홍준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버스 운전병으로 근무 중인 이준혁 씨는 흔히들 'A급 병사'라고 불리는 모습의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등병 때부터 남들이 휴게실에서 웃고 떠들며 쉬고 있을 때도 솔선수범해서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상병을 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모습을 인정받고 분대장 약장을 차게 되었다. 동기와 후임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그는 입대 전까지의 자신이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의 모습을 청산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그 결과 지금의 수송분대장 이준혁이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난 군 복무 기간은 단순히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내적 기량을 다진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 인터뷰는 2021년 6월 19일에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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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는 이준혁 씨는 장래 희망마저도 자율 주행 차량의 전자제어 장치를 설계하는 직업일 정도로 자동차 애호가다. 군 입대 전 진로를 생각해 전공을 살려 통신병으로 지원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성적인 고민마저도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남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먼저 시작하는 고된 일과를 몇 달째 이어오고 있지만 그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운전을 하는 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우리 부대에서 버스 운전병 보직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 상병 이준혁이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장점은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너무 겉돈다는 거? 이건 내가 너무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처음 입대할 때부터 운전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보통신공학을 전공 중이다 보니 처음에는 운전병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통신병과 운전병 보직을 놓고 가족과 상의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동차가 좋아서' 운전병을 택했다.


운전병은 대형 운전병, 중형 운전병, 그리고 소형 운전병으로 나뉜다. 처음 지원을 할 때부터 어떤 차량을 몰지 고르는 것인가?


아니다. 훈련소에서 훈련병을 어느 부대로 보낼지에 대해 추첨하듯, 야전수송교육연대(이하 야수교)에서도 교육생들이 어떤 유형의 차량을 운용할지에 대해 정해준다. 다만 소형반의 경우 인원이 많이 없으면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내 기수 때도 중형반과 대형반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소형 운전병이 편하다고 들어서 소형 차량을 몰고 싶었는데, 꼼짝없이 중형 운전병 교육을 받고 자대에 왔다.


소형·중형·대형 차량이 어떠한 차량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줄 수 있나?


소형 차량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반떼 같은 승용차들이다. 코란도, 봉고, 스타렉스 같은 것들도 소형 차량에 포함된다. 중형은 2.5톤부터 5톤까지의 중량을 싣고 갈 수 있는 차량들이다. 흔히 두돈반이라고 부르는 K-511, 현대 마이티 트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형은 적재물이 5t을 넘어가는 차량과 버스 차량이다.


버스 운전병으로서의 일과를 말해줄 수 있는가?


기상나팔이 울리기 30분 전에 일어나서 샤워와 식사를 마친다. 일과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버스를 몰고 나가, 부대 인근 숙소에서 지내는 간부들의 출근을 돕는다. 일과가 시작되면 그날 운행이 있는 인원끼리 모여 배차 신고를 하고, 수송부에 내려가 차량 아침 점호를 실시한다. 자신이 그날 몰고 나갈 차량의 상태가 양호한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스케줄에 따라 운행을 한다. 사격이 있는 날이면 사격 인원들을 사격장에 데려다주고, 신병 인솔 배차가 있으면 우리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들을 데리러 간다. 최근에는 장병들의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도 내가 데려다준다. 정해져 있는 운행을 모두 다녀오면 오후 3시 즈음이 된다. 그때부터 체력 단련 전까지 분대원들에게 특이사항이나 아픈 곳, 고민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저녁에 버스를 타고 퇴근해야 하는 간부들이 많으면 따로 퇴근 버스도 운영한다. 배차가 없는 날에는 세차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배차가 없는 날은 일주일에 며칠 정도 있나?


요즘은 바빠서 거의 없다. 지난주와 이번 주 모두 하루도 빠짐없이 배차가 있었다. 버스는 인원 수송을 유용하게 할 수 있는 차량이다 보니 배차가 빠지기 어렵다.


일과시간 외에도 출근 버스, 퇴근 버스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배차가 굉장히 많다. 개인 정비 시간이 줄어드는 셈인데, 힘들지는 않나?


힘들지 않다. 오히려 좋다. 출·퇴근 버스는 10km가량의 거리를 다녀오는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면 된다. 휴가자 복귀 버스의 경우에는 2~3시간 정도가 걸리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좋다. 운전하는 것이 좋아 오히려 배차를 넣어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운전병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20대 초반에 사회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나. 면허가 있다 한들 차량을 마련할 경제력도 안 되고, 겨우겨우 차를 산다고 한들 보험료 같은 유지비용도 부담스러우니까. 군대에서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운행을 나갔을 때 부대에서 식사를 진행하는 시간까지 복귀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런 날에는 함께 운행을 나간 간부가 식당에서 밥을 사준다. 이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바깥 풍경을 많이 구경하게 된다. 이 점도 운전병의 장점이다.


여태껏 운전병으로서 가장 먼 거리를 다녀왔던 운행은?


왕복 500km짜리 운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전북 익산에 있는 부사관 학교에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하는 간부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오전 7시에 출발해 오후 7시에 돌아왔다. 정말 재밌었다.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억에 남는 배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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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중간만 하다가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준혁 씨는 어중간한 군 생활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한 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소에 입소했고, 조교들이 중대장 훈련병을 모집할 때 번쩍 손을 들었다. 자대에 오면서는 나름의 군 생활 목표를 설정했다. 이등병 때는 부식 차량 운전하기였고, 일병에서 상병 사이의 목표는 분대장을 맡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운전병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이준혁 씨는, 붙임성 없는 성격이 지금의 활기찬 자신을 만들었다고 돌아봤다.


군대에 와서 변한 것이 있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고등학교 때 겉도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싶어서 자대에 오자마자 처음 한 일이 선임과 동기의 이름을 이틀 만에 다 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분대원들이랑 휴게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수송부에 내려가면 일밖에 안 했다. 정비병 애들 옆에서 기웃거리다가 거들어주고, 정비할 때 쓰는 수입지도 쓰레기통에 꽉 차면 누가 말하기 전에 버려주는 등의 잡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전 분대장이 나를 부르더니 내가 차기 분대장이라고 하더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 할 일만 했지, 성과를 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분대장으로서의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워낙 자존감이 낮고 성격도 소극적이다 보니까 대뜸 나서기 힘들었다. 그런데 막상 분대장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이 견장이 내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같다. 분대원들이 나를 잘 따라주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군 생활이 정말 행복하다. 좋아하는 운전도 하고, 인정도 받고, 군대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도 모두 달성했으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목표는 분대장으로서 애들을 잘 이끌며 사고 없이 전역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하는 이준혁 씨의 고교 생활은 썩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 모습을 '목표가 뚜렷했던 것에 비해 두서없이 공부했다'고 추억한다. 고등학생 때까지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인 이준혁 씨는 군대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전역하고 나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에 매진할 것이라는 그의 내일을 응원한다.


최대한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자! 이런 욕심이 있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모두 좋은 학교에 갔다. 나 혼자 덜떨어진 학교로 간 것 같아서 자존감이 많이 하락했다. 대학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수준이 있었는데, 학교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내 성적에 맞춰 들어온 학교이니, 싫더라도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수를 할 생각은 없었나?


입시 결과가 나온 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흔히 들으면 알 수 있는 사대문 학교에 갈 것이 아니라면 재수를 하지 말라더라. 정말 대학에 뜻이 있다면 충실히 학점을 쌓고 편입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1년 더 대입 준비를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만큼) 더 열심히 살아보자는 생각에 고등학생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도 받는 등 뜻깊은 대학 생활을 했다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바뀐 점이 있나?


너(글쓴이) 같은 부류가 있지 않나. 조용히 글 쓰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이공계이다 보니까 글 쓰는 모습을 보며 뭐 어떻게 저리 쓰나 싶었다. 그런데 너도 너 나름의 뜻이 있고 열정이 있으니 쓰는 게 아닌가.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 부대에 고학력자가 많은데, 함께 지내다 보며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느꼈다. 만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인터넷을 보면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비하성 글이 많지 않나?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을 갖게 하는 글들. 그런데 막상 군대에 와서 그런 류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인터넷에서의 얘기와 달랐다. 나와 다른 이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군 생활이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이준혁에게 군대란?


이해하면 안 되는 곳? 어떠한 일을 할 때 그것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올해 12월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갈 이준혁 씨에게 한마디 해달라.


뺑이 치느라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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