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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보직일줄 알았지만...' PX병 곽도엽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④]

by 채성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프롤로그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①] '수원 박새로이' 꿈꾸는 정비병 김요셉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②] "군대가 사람 두 번 살렸죠" 배차계원 안홍준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③] '군대가 만들어낸 A급 용사' 버스 운전병 이준혁


적어도 20대에게 있어 군대만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든, 혹은 일찍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입게 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으며 까까머리가 되기 전까지 걸어왔던 길 또한 상이한 이들과 좋든 싫든 24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이 시간을 그저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게 된다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역갈등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의식을 갖고 있던 이에게는 계층차별 인식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자신을 '엘리트 훈련병'으로 자대에 전입 왔다고 소개한 곽도엽 씨는 당구와 볼링 없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욜로 라이프'를 살아왔다. PX병이 된 계기도 단순하다. 전투근무지원 소대원으로 지내던 중 PX병을 모집한다길래 '꿀보직'일 것 같아 냉큼 지원했다. 그랬던 곽도엽 씨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다소 소홀이 해왔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고, 생각도 않았던 자격증을 많이 따고 싶다. 겉으로 봤을 때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마냥 밝아 보이지만, 어쩌면 그에게 지난 군생활은 많은 것들을 바뀌게끔 만들어준 시간이 아닐까? (본 인터뷰는 2021년 7월 18일에 진행되었다)

아르바이트 경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용돈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뷔페 음식 요리, 상하차 등등 온갖 알바를 다 해봤다. 다만 마트 아르바이트는 해본 적이 없어 '포스기로 바코드만 찍으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용, 저는 PX병 상병 곽도엽이라고 해용. 오늘은 인터뷰를 할 거예용. 긴장이 되지만 잘 말해보도록 할게용~!


PX병이 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처음부터 PX병은 아니었다. 전투근무지원 소대로 배정을 받았는데, 애들도 착하고 좋은 보직이었다. 계속 전근지 소대원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PX병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보통 PX병 하면 '오? 개꿀이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지원했다. 그렇게 PX병이 되었다.


PX병을 하기 전까지의 PX병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는가?


계산 삑! 삑! 하고, 할 거 없으면 쉬고. 함께 일하는 이모님이 사주시는 음식 먹으면서 꿀 빠는 보직이라고 생각했다.


현시점에서는 PX병이라는 보직이 어떻게 느껴지나?


지금은 '개꿀'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지옥이었다. 갓 PX병이 되었을 때 대대장님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과 면담을 했다. 일과표를 보니 평일에 19시 30분까지 근무하고, 주말에도 쉬는 날 없이 출근하더라. 심지어 빨간 날에도! 큰일 났다 싶었는데 차마 대대장님 앞에서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삑! 삑! 하고 계산만 하는 게 아니더라. 물품 검수·청구, 재고 조사·정리... 생각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야간 훈련이 있는 날에는 저녁에 PX 문을 닫은 뒤 훈련에도 참여해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PX병의 일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달라.


09시 30분에 출근해 면세주류를 뽑고 일품 검사를 한다. 그다음 유통기한을 다 확인하고, 납품기일을 검수하다 보면 10시 20분 즈음이 된다. 10시 30분부터 간부님들의 PX 이용 시간이어서 그 전 10분 동안 비어있는 가판대를 채운 뒤 계산을 도와드려야 한다. 11시부터 12시까지 점심밥을 먹은 뒤 다시 출근해서 물품 납품을 받는다. 13시부터 16시까지는 용사들의 PX 계산을 돕고, 물품 청구를 한다. 17시 30분부터 19시 30분까지 저녁 근무를 서고 마감한 뒤 퇴근한다. 그러면 거의 20시 즈음이 된다.


개인정비 시간이 사실상 한 시간밖에 안 된다. 많이 힘들겠다.


그렇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이 스케줄에 몸이 적응을 하더라. 그래서 지금은 괜찮아졌다.


자신이 생각하는 PX병의 힘든 점은 무엇인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부대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성격 좋은 전우님도 만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전우님도 만난다. 예의 없는 전우님을 응대하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내게 반말을 하면서 물건을 툭툭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속으로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다.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 물품을 계속 받는데 생각보다 양이 엄청 많다. 계산 자체도 하루에 2~300명가량의 손님을 받다 보니 힘이 든다.


그럼에도 PX병만의 장점이 있어서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을 듯하다.


우선 PX 건물은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배려 덕분에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다. 예전 중대장님께서 불침번을 빼주시고, 큰 훈련이 아닌 이상은 PX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등 부담을 많이 덜어주셨다. 함께 일하는 이모님과 관리관님이 가끔씩 먹을 것을 사주신다. 또 계속 PX에 있다 보니 원하는 물건을 남들보다 먼저 구매할 수 있다. 그런 점들이 PX병의 좋은 점이다.



곽도엽_2.png

사회에서의 곽도엽 씨는 놀기 좋아하고 운동에 관심 있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단 하루도 볼링이나 당구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로 놀러 다녔고, 목욕탕에서 친구의 광배를 보고 화들짝 놀라 운동을 시작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지만 곽도엽 씨의 인생은 군부대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동기의 도움을 받아 한결 수월하게 몸을 만들었고,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당구와 볼링을 끊게 됐다. 한평생 연이 없을 줄 알았던 공부와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이다.


군대에 오기 전의 곽도엽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이었나?


노는 것을 많이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매일 친구들과 당구치고 볼링 치며 놀았다.


대학에서 메카트로닉스 공학을 전공했다.


노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공부를 거의 안 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대학에는 들어가야겠는데 이상한 과에 갔다가는 절대 취직을 못할 것 같았다. 일자리가 잘 구해지는 과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메카트로닉스 공학과를 골랐다.


대학을 1년 다녀보니 어떤 것 같았나?


처음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다들 서로 어색하지 않나? 친해지고 싶어서 동기들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그러다 보니 과 대표가 되었다. 한 학기에 20만 원을 줬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이 글을 읽을 신입생들은 부디 과대표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


전공 공부 자체는 어땠나?


메카트로닉스 전공서적이 있다. 그건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 어차피 시험을 볼 때 오픈북으로 쳐서 공부를 안 해도 생각보다 학점이 잘 나왔다. 프로그래밍 수업은 반드시 좋은 학점을 받아야 했다. 이것만큼은 열심히 공부해서 A+를 맞았다.


군대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


유튜브를 보니 군대는 무조건 일찍 가야 한다는 내용의 영상이 많았다. 그래서 1학년이 끝나자마자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3월에 해군을 넣었는데, 1차는 통과했지만 2차 면접은 중·고등학교 출결이 너무 안 좋아서 떨어졌다. 다음에는 무조건 붙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보는데, 경쟁률이 0.9인 곳이 있길래 바로 지원했다. 그게 육군 전차 포병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면접도 안 봐서 1차만 붙으면 무조건 합격이었다. 그렇게 입대를 했고, 훈련소를 엘리트 훈련병으로 수료한 다음 육군 기계화학교에 갔다. 그런데 나랑 너무 안 맞아서 퇴교하고 지금 복무 중인 부대로 왔다.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바뀐 점이 있나?


우선 부대에 오니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많았다. 연등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다들 군생활을 알차게 보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공부에 연이 없던 나도 토익을 시작했다. 며칠 가지는 않았지만. 또 한 번은 생활관에서 취직 관련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막연히 중소기업은 쉽게 취직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동기들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중소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도 필수로 따야 하는 자격증이 정말 많다더라. 한국사 자격증과 토익은 기본으로 따야 하고. 그래서 자격증을 많이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실천은 안 하고 있다.



곽도엽_3.png Q. 입대 전 세웠던 군생활 동안의 계획이 있었나? A. 있었지. 나는 운동! 3대 300은 찍고 나가자! (배경 이미지 출처 : 국방일보)

예전에는 팔굽혀펴기 1~20개가 하루 운동의 전부였다던 곽도엽 씨의 '쇠질 인생'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되었다. 함께 대중 목욕탕에 갔던 친구의 광배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등이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단단했다. 자신도 하루에 열 몇개씩 팔굽혀펴기를 하니 광배근이 있겠지, 하고 옆구리에 힘을 줬다. 근육이 하나도 없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던 곽도엽 씨는 그날 마트에 들려 턱걸이봉을 구매해,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군대에 오기 전부터 운동을 했다던 동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 부대의 체력단련장은 본격적으로 몸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기구밖에 없어, 자대 전입 초기에 많이 난감했다. 그때 동기가 옆에서 서포트를 많이 해줬다. 전문 트레이너에게 배운 자세를 자세히 알려줘서 많이 배웠다.


군대는 사회에서 접하지 못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인만큼 기존의 편견 또한 깨트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곽도엽 씨에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나?


군대에 오기 전까지는 몸 크고 헬스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자신이 강한 것을 아니까 성격도 더럽고 불친절하고, 약자에게 막 대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훈련소에서 특전사에 들어가려던 몸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얘는 인성이 많이 안 좋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니 그렇지 않더라. 주변 동기들을 잘 챙겨주고 말도 잘 통하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많이 놀랐다.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역까지 3달 정도 남았다. 그동안 군생활에 대해 느낀 점이 있나?


군대는 무조건 한 번은 와야 함을 느꼈다. 군생활이 마치 사회생활을 하기 전의 선행학습 같다. 상명하복도 배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몸에 배고. 군 복무 경험 없이 바로 취직해서 일하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꼭 와야 해! 정확히 설명은 못 하겠는데, 한 번쯤 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여러분, 군대 미루지 말고! 꼭 빨리 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빨리 오세요! (웃음)


남은 군생활 동안의 목표는?


와일드리프트 그랜드 마스터 가기! (현재 티어가 어떻게 되나?) 다이아 2! (시간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인가?) 시간적으로는 무조건 가능해! 무조건!


마지막으로 올해 11월 21일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될 곽도엽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도엽아! 민간인이 된다고 해서 너무 놀기만 하지는 말고! 공부도 하면서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살아라!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⑤] "미래에 대한 여러 갈림길이 생겼다" 통신병 권범수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⑥] "군대에서 도전을 배웠다" 대대 인사계원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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