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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Oct 29. 2022

히어로즈의 세 번째 우승 도전, 이번 테마는 '언더독'

[준PO&PO 리뷰]

키움 히어로즈가 3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로 돌아왔다. 첫 한국시리즈 당시의 핵타선, 2019년의 불펜 왕국도 아닌 키움이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노린다. 영웅들은 이미 두 명의 골리앗을 꺾고 인천으로 향한다. 남은 일곱 경기 동안 4패보다 4승을 먼저 거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핵 타선', '불펜 왕국', 그리고 '언더독'

타선은 시즌 내내 '정후 히어로즈'라는 말을 들었다. 투수진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붕괴했다. 아무도 키움을 우승 후보로 꼽지 않았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LG 구단 내부에서도 그랬고, 대다수 야구인이 같은 생각이었다. 히어로즈가 플레이오프에 올라오면 LG가 유리하다고. (...) LG로선 플레이오프를 최단 경기를 끝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제 조건이 갖춰졌다. 결과는 스스로 내야 한다. 밥상이 차려졌다. - 5차전까지 치열했던 준PO…상대는 바랐던 히어로즈, LG 앞에 차려진 밥상(스포츠조선)


2014년. 창단 9년 만에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넥센은 리그 최고의 핵 타선을 자랑했다. KBO리그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의 대기록을 작성한 '신고선수 신화' 서건창, 정규시즌 동안 52홈런을 몰쳤던 '3년 연속 홈런왕' 박병호, 역대 최초 40홈런 유격수 강정호, 그리고 20홈런 외야수 유한준과 이택근이 쉴 새 없이 상대 팀 마운드를 두들겼다. 투수진이 9점을 내주면 다음 공격 때 10점을 내는 전략으로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LG에게 4경기 동안 36점을 뽑아낸 다음 대구로 내려갔다.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 넥센은 타선의 침묵과 치명적인 수비 실책이 겹치며 준우승의 고배를 마셨다.


2019년, 창단 12년 차. 우승을 원했던 영웅들은 변화했다. 수년간 타선의 선봉장 역할을 도맡았던 고종욱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 보내고 삼성 라이온즈에게 포수 이지영을 받아오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 삼각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름값에 관계없이 데이터에 따라 불펜 투수를 기용했다. 무수한 혁신 끝에 두 명의 주전급 포수가 홈 플레이트를 지키고 어느 투수든 위기 상황에 망설임 없이 올라오는 불펜 왕국으로 거듭났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천적' LG를, 플레이오프에서 2년 연속으로 만난 SK를 꺾었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허무히 탈락했다.


2022년. 키움은 FA 자격을 취득한 박병호를 헐값에 떠나보냈다. 홈런왕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1루수 글러브를 꼈던 일곱 명의 내야수(김웅빈·박찬혁·김수환·김태진·전병우·이병규·이주형)는 고작 17홈런을 합작했다(박병호 36홈런). 유력한 MVP 후보 이정후를 제외하면 평균 이상의 성적을 올린 타자가 김혜성과 야시엘 푸이그밖에 없어, 시즌 내내 '정후 히어로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투수진은 전반기 동안 약점이 없다는 평을 받았으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부상으로 이탈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팬심업계 전문가 모두 키움을 우승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다(혹은 하위권으로 예상했다). LG는 아예 플레이오프 맞상대로 키움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핵 타선이었으며 불펜 왕국이었던 히어로즈는 이제 '이정후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강점 없는 팀이 된 것처럼 보였다. 한편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전년도 우승팀 KT 위즈는 전체적인 밸런스가 키움보다 좋다는 평을 받았으며, 플레이오프 상대 팀 LG는 정규시즌이 끝나기 직전까지 치열한 1위 싸움을 벌였던 강팀이었다. 키움은 이번 가을 잔치에서 철저히 '불청객', '언더독' 취급을 받았다.




“재밌네요, 판 뒤집는 거”

데뷔 후 9년간 1군 197타석 1홈런에 그쳤던 임지열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만 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최원태는) 수많은 LG 팬들 앞에서 던지면 위압감이 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아웃카운트를 잡으면 갑자기 조용해지는게 더 재밌더라”며 미소지었다. - '2이닝 무실점' 최원태 "LG팬 응원 위압감? 아웃시키면 조용해지는게 재밌더라"[PO2 인터뷰]


그러든 말든 키움은 이겼다. 이기고 또 이겼다. 밸런스가 좋다던 KT보다 먼저 3승을 챙겨 잠실로 향했고, 20년 만의 한국시리즈를 바라보던 LG를 꺾은 뒤 인천행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말 그대로 '언더독의 대반란'이다.


'1할 타자' 이용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3할 7푼 5리의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을 이끌었다. 선수로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30대 후반의 베테랑이 선두타자로 나와 솔선수범하니 다른 타자들도 흥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NC 다이노스에서 방출됐던 김준완은 플레이오프에서 4할대 출루율로 뛰어난 선구안을 뽐냈다. 백업 내야수 김태진은 지난 아홉 경기 중 일곱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3할 3푼 3리의 고타율을 기록했으며, 백업 외야수 박준태는 플레이오프 3경기서 4할 타율로 활약했다. 데뷔 후 9년간 1군 197타석 1홈런에 그쳤던 임지열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만 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한 방은 준PO 1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쏘아 올린 쐐기 투런포, 다른 한 방은 플레이오프 3차전의 승패를 결정지은 역전 투런포였다.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타일러 애플러는 포스트시즌 들어 완벽한 3선발로 거듭났다. 첫 등판이었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경기 초반 3개의 실책이 나왔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5이닝 5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됐으나 대부분의 실점이 실책에 의한 것이었으며, 본인의 실점은 단 한 점뿐이었다. 어제는 단 사흘만을 쉬고 다시 마운드에 올라 1차전에서 맞붙었던 LG의 에이스 케이시 켈리와 재대결을 펼쳤으며, 6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부상과 부진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했던 5선발 최원태는 팀이 단 한 점차 로 쫓기고 있던 플레이오프 2차전 6회 말에 구원 등판해, 최고 151km/h의 고속 투심을 던지며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을 구했다. 


플레이오프 시작 전 키움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은 25%에 불과했다. 이 확률은 플레이오프 1차전 종료 직후 19.4%로 줄어들었다. 그러든 말든 키움은 이겼다. 정규시즌 내내 부진하던 만년 유망주가 시리즈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타를 치며 승기를 가져왔다. 173cm의 단신 투수가 8회 초 무사 1·2루 위기에서 투수 앞 번트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낸 뒤 당황한 2루 주자까지 아웃시키는 플레이로 승리를 지켰다. 통산 평균자책점 5점대의 고졸 3년 차 투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부상 당한 필승조 투수들의 공백을 메웠다. 


이정후는 PO 3차전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래서 스포츠가 재밌는 것 같다"며 "아무리 불리하다는 평을 받아도 야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승리에 필요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네 번만 더 올리면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여덟 번의 실패, '언더독 돌풍'의 원동력

플레이오프 3차전, 김재웅이 무사 1·2루 위기를 2사 1루로 둔갑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키움과 SSG의 정규시즌 승차는 무려 아홉 경기였다. 양 팀의 상대 전적은 5승 11패로 키움의 '절대 열세'였다. 정규시즌 종료 후 아홉 번의 보너스 경기를 치른 키움은 다음 시리즈 시작 전까지 단 사흘의 휴식을 취하는 반면, 10월 8일 정규시즌 최종전 이후 3주 가까이 경기가 없었던 SSG의 선수단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그라운드에 오른다.


모두 무의미한 이야기다. 정규시즌 당시의 상대 전적 우세와 열세를 진지하게 따졌다면 LG를 플레이오프에서 꺾은 키움은 없었다. 75%의 확률을 뒤집은 히어로즈는 없었다. 경우의 수에 매몰된 것처럼 조급한 경기력을 보여주다 자멸하기 일쑤였던 시즌 후반의 모습처럼, 준플레이오프에서 KT에게 일찍이 패배한 결과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요키시의 포스트시즌 성적이 나쁘고 안우진의 KT 상대 시 평균자책점이 5점대로 높았다 따위 푸념만이 있었을 테다. 영웅들은 세간의 평가를 의식하고 부담하는 대신, 눈앞의 승리에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남은 네 경기, 혹은 일곱 경기에서도 그럴 예정이다.


히어로즈는 지난 10년간 너무 많이 실패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전에 두고 내리 패배하며 리버스 스윕을 내줬다. 감독의 조급증이 커다란 재앙을 불러왔고, 외풍에 시달리다 지쳐 주저앉았다. 실책 하나에 집중력이 무너지며 무기력하게 무릎 꿇었다. 선수 개개인의 일탈이 뼈아픈 전력 이탈을 초래했다. 지켜보는 팬들도 괴로웠겠지만, 분명 선수들에게도 상처가 됐을 테다. 고통 뒤에는 새살이 돋고, 전년도보다 단단해진 히어로즈가 됐을 것이다. 그러니 커다란 사생활 문제도 외풍도 없이 정규시즌을 넘기고, 포스트시즌 9경기 동안 13실책을 저질렀음에도 무너지지 않던 마운드는 우연이 아니다. 앞선 여덟 번의 실패가 '언더독 돌풍'을 불러왔다.


안우진, 요키시, 이지영, 김혜성, 이정후 등 3년 전 한국시리즈 무대를 경험했던 멤버들이 여전히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차원이 다른 압박감 속에서 그라운드를 누볐을 '월드시리즈 경험자' 푸이그도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3년 전, 그리고 9년 전과는 다르다. 11월 1일, 키움은 가장 높은 곳에서도 언더독의 기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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