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22.07.24~25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리글리 필드
KBO리그의 대표적인 같은 연고지 라이벌 팀으로 거론되는 두산 베어스·LG 트윈스가 그렇듯,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두 메이저리그 구단 시카고 컵스·화이트삭스 역시 여러 면에서 상반된 특징을 가지며 날카로운 라이벌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경기장이 있는 컵스는 중산층 이상의 백인&화이트 칼라가, 도심 중심부에서 살짝 떨어진 지역에 홈구장이 위치해 있는 화이트삭스는 흑인&블루칼라가 주된 팬덤이라고 한다. 양 팀 모두 21세기 들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각각 85년(화이트삭스), 108년(컵스)간 무관이기도 했다.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를 찾아가기 전날에 화이트삭스로부터 가급적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하라는 메일이 왔다. 무시하고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가 어마무시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이날 경기는 화이트삭스가 2회 말 빅이닝을 만들며 대량 득점을 한 뒤 9회까지 소강상태가 계속됐다. 정말 많은 관중이 일요일 오후에 시간을 내어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 찾아온 바람에 최고 꿀잼 모먼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분명 마이너리그 구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웅장한 경기장이었다. 91년에 개장한 야구장이니만큼 시설 또한 나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2% 아쉬움이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경기장 주변에 야구와 관련된 요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2회 말 화이트삭스가 5득점 하며 빅이닝을 만든 이후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소강상태가 계속됐다. 그리고 경기장 입장을 2회 말이 지나서야 하는 바람에 아무런 감동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다 왔다. 경기장 자체도 거대하기는 하지만 이곳만의 이렇다 할 특징은 딱히 없었다.
다만 6점 차로 패배 중인 상황에서도 악을 써가며 응원하던 소수의 클리블랜드 팬들이 인상 깊었다. 뒷좌석 관중들이 "내일 사장한테 근무시간 조정해달라 하고 대답 맘에 안 들면 퇴사함ㅎ" 같은 얘기를 나누길래, 어느 나라든 직장인들은 비슷한 대화를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화이트삭스 구단에 의하면 24일 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를 찾아온 관중은 약 3만 명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숫자고, 화이트삭스가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그러나 다음날인 월요일 저녁에 리글리 필드에 가자 경기장 주변에서부터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팬들의 열기가 느껴져, '컵스'의 분위기는 차원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리글리 필드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야구장 밖에서도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의 유무였다.
리글리 필드에는 티켓을 소지한 관중만이 입장할 수 있는 야외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경기 시작 전 좀이 쑤셔 주체할 수 없는 어린이 팬들은 이곳에서 캐치볼과 물놀이를 즐기고, 성인 관중 역시 컵스 팬으로 성장 중인 자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잔디밭 옆에는 시카고 컵스의 오랜 역사를 빛냈던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들의 동상이 있어 이곳이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닌 컵스 팬들을 위한 쉼터임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리글리 필드는 1911년 개장해 올해 108주년을 맞이한 팬웨이 파크 다음으로 오래된 메이저리그 구장이다. 그래서인지 경기장에 찾아가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시설이 안 좋다', 'MLB 구장이라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야구장' 같은 글이 많이 나왔다.
다른 메이저 구장에 비해 시설이 상당히 노쇠화된 것은 맞았다. 경기장을 돌아다녀 보니 부시 스타디움에는 있던 에스컬레이터도 없었고, 몇몇 관중석은 '여기서 경기가 보일까?' 싶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낭만과 컵스 팬들의 열기가 시설의 노쇠화로 인한 불편을 전혀 못 느끼게 해줬다. 담쟁이덩굴로 덮여있는 외야 펜스와 외야 한가운데에 있는 구식 전광판 등은 리글리 필드의 고풍스러운 멋을 더해줬다.관중들은 단 한 순간도 귀가 편할 틈이 없었을 정도로 신나게 컵스를 응원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평소 컵스 팬을 제대로 보지 않던 카디널스 팬마저도 경기에 몰입해 컵스의 승리를 응원하게 만들 정도였다.
공항 근처에 위치한 독립야구단 시카고 독스, 같은 도시의 라이벌 팀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리고 컵스 모두 경기장 내에서 공통적으로 시카고 핫도그라는 시카고 특유의 핫도그를 판매했다. '이게 정말 그게 맞나...?'싶을 정도로 쨍한 색의 렐리쉬, 그리고 소시지만한 크기의 거대한 피클이 특징인 핫도그다. 적어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에서 판매하던 핫도그보다는 맛있었다.
이날 경기의 컵스 선발 투수는 6월 말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기 시작한 애드리안 샘슨(Adrian Sampson). KBO리그 팬이라면 익숙한 이름으로, 2년 전 롯데 자이언츠의 선발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수다.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는 등 이번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타선이 침묵하며 시즌 첫승 수확에는 실패했다. 어쩌면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선발이 익숙한 선수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시카고 컵스 팬들은 정말 말 그대로 흥부자였다. 좀처럼 점수가 나지 않아 다소 지루할 수도 있던 경기였지만, 주변 관중들이 플레이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집중하고 있으니 절로 동화돼서 컵스의 승리를 바라게 됐다. 시카고 주민 중에는 야구는 몰라도 시카고 컵스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백번 이해할 수 있는 응원 분이기였다.
지난 1년간 미주리주에서 거주하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찐팬이 됐지만, 솔직히 응원 분위기는 월요일 낮에도 4만 명이 야구 보러 오는 컵스가 압살하는 듯했다. 시카고 연고 빅리그 팀간의 현장 분위기 대결은 컵스의 승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