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망해가고, 아이는 아프고
예설이가 학교에 적응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재직 중이던 회사에는 점점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쌓여 있던 현금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회사를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중소기업 회계 팀장이 설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라는 부담감이 이런 것이구나를 절실히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 시기, 아이들 사이에는 A형 독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어김없이 예설이도 A형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열과 기침으로 힘들어해서 병원에 다니며 주사를 맞히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증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구토와 설사까지 시작되었다. 예설이는 기력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우리는 병원을 오가며 수액을 맞추며 겨우겨우 아이를 보살폈다.
아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주 동안 구토 증세가 이어졌다.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안 좋아지고, 또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되는 상황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러던 중 자반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즈음부터 회사의 자금난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겨우 연명하는 상황이었다. 집에서는 예설이가 아파서 온 가족이 힘겨워하고 있고, 회사에서는 하루하루가 버거워지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더니, 정말 죽어라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또다른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예설이이가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입원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인가.'
병원에서는 예설이의 구토 증상이 신장에 생긴 자반증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상태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예설이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틀 정도 와이프와 예설이가 병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예설이의 요청으로 아빠인 내가 병원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일주일 휴가를 낼 수 있어서, 짐을 싸고 병원으로 들어가 예설이와의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소변을 볼 때마다 모아야 했다. 새벽에도 깨워서 화장실에 데려가야 했다. 혈액검사를 받을 때마다 바늘에 찔려 우는 예설이를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조여왔는지 모른다. 차라리 내가 아픈 건 괜찮은데, 아이가 아프니까 병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무기력하게 느껴졌었다다.
첫 소변검사 결과는 단백뇨가 기준치보다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지금 생각나지 않지만, 정상의 10배 정도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그 말을 듣고 '단백뇨가 뭐야?' 하며 또다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장질환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만성신부전증이었다. 정말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설이는 윌리엄스 증후군이 있는 아이인데, 혹시 그것과 관련해서 신장 쪽이 안 좋은데 이번 자반증으로 인해 표출된 건가? 그런데 지난해 윌리엄스 증후군 판정을 받을 때 유전자 검사부터 해서 모든 기능에 대한 검사를 마쳤는데, 그때는 발달장애 외에는 다른 이상 증상이 없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예설이의 첫 진단을 그렇게 듣고, 병원에서는 일주일이 될지 2주일이 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24시간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약을 조절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