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아이가 알려준 삶의 지혜
예설이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초긴장 사태에 돌입했다. 과연 학교에서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괜찮을지 등등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아이여도 초등학교 입학은 그동안의 생활과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지만 예설이의 경우는 더 특별했다. 예설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였다.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시작
학교 입학 초기에 특수학급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예설이의 경우는 특수학급에서의 생활과 일반 학급에서의 생활을 병행하다가 보조 선생님을 부모가 직접 보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제도가 너무 미흡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보조 선생님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설렘과 기대보다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던 마음으로 예설이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치 내가 첫 학교에 가는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처음 2주는 학교에서 계속 부정적인 피드백이 왔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던지,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서 돌아다닌다던지 하는 등의 행동들에 대한 피드백들이었다. 이런 소식들이 하나둘씩 들려올 때마다 마음은 무거워졌고, 점점 더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우리 부부는 보조 선생님을 구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망연자실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예설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지 고민하며 밤마다 불안한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우리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점점 더 커져갔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슬픔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그렇게 절망감이 가장 깊을 때, 3주차가 돌입하였고, 학교에서는 갑자기 긍정적 피드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태도가 많이 개선이 되었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행동들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처음 2주는 적응 기간이 아니었나 라는 것이 피드백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 구석에 작은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고, 조금씩 안도감이 찾아왔다. 우리 예설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예설이는 규칙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계속 그러면 안 된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라는 부분을 교육하고 있었다.
예설이의 대답은 "나도 아는데, 내 마음처럼 안 돼서 속상하다고" 였다.
그 말을 듣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더 속상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나 속상했지만 다그치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안아주면서 예설이를 다독여 주었다. 예설이의 마음속도와 세상의 속도 사이의 간극을 느끼며,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시간과 사랑임을 깨달았다.
마음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우다
그렇게 예설이는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예설이는 더이상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지도 않았다. 한 가지 이슈는 수업 시간의 반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어서 자꾸 늘어지는 부분에 대한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학교에서는 이 정도는 정상적인 아이들도 겪는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피드백이었다.
처음의 불안과 좌절감은 점차 성취감과 고요한 기쁨으로 바뀌어갔다. 예설이가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우리는 그 어떤 큰 성공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
마치 사막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이었다.
예설이는 느리지만 꾸준히 적응하고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는 느리지만 꾸준했다.
그런 아이를 보다보며 부모로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다그치면 더 잘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체력이 약한 아이이기도 하고 집중력이 약한 것이 내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더이상 다그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예설이의 체력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예설이에게 배운 삶의 지혜
그런 예설이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꾸준함과 기다림, 이것은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어른인 우리도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자꾸 욕심을 부린다. 인내하지 못하고 빠른 결과를 얻기를 원한다.
그런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포기해 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예설이는 나에게 마음의 속도로 걷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를 존중하며 꾸준히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예설이처럼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며 걷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오늘도 예설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걸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런 예설이의 손을 잡고, 예설이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