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역마살 인정?
아파트 계약 서류 준비를 위해 주민등록 초본의 과거 주소 변동사항을 보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총 15곳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10번, 독립 후 5번의 초본상 등록지 이외에
초본에 나와 있지 않은 고시원 3곳, 해외거주지 2곳까지
합치면 총 20곳에서 생활한 것인데, 지금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니
평균 2년을 못 채우고 이사를 다닌 셈이다.
이 정도면 역마살 인정?
아내와는 4평 원룸에서부터 시작했었다.
이후 아이가 태어나고 투룸 빌라, 쓰리룸 빌라를 거쳐
포룸으로 가지는 못하고
우리는 대만에서 거주를 하게 되었다.
대만에서의 첫 집은 방 2개짜리 아파트였다.
낮에도 빛이 잘, 아니 거의 들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아파트라는 장점과
외국에 나와서까지 이사를 다니기는 싫었기에 계약을 연장하고 싶었으나
월세를 아끼자는 아내 의견에 따라 1년만 살고 나와, 대만에서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해외 역마살 인정?
그렇게 총 2년의 대만 생활 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귀국이 임박한 시기, 내가 1주일 먼저 한국에 돌아와 한국에 살 집을 구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1주일이었고 난 1주일 안에 살 집을 구해야만 했다.
이것은 '구해줘! 홈즈'잖아.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귀국 일정을 뒤로 미루고 적어도 2~3주는 여유를 두고 진행했거나
지인을 통해 미리 집을 알아봤어야 했다. 이 실수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선택이 될 줄이야.
전세자금으로 할 목돈도 없고
해외에서 거주하다 보니 소득입증 서류가 부족해 전세대출을 받을 형편도 안 되어
결국에 월세로 들어갈 만한 집을 찾게 되었다.
1주일 만에 월세집 찾자니
빈집이나 계약 중간에 나가고 싶은 세입자가 사는 집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집들은 무슨 문제가 있거나 대게 상태가 안 좋았다.
마음은 급해지고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게도 돈 10만 원이면 더 좋은 집을 계약할 수도 있었을 텐데
돈 10만 원이 아까워서 기회를 놓치기도 했고
그러던 차에 알게 된 계단 몇 개 안 내려간다는 반지하 투룸을 보게 되었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에 몸도 시리고 마음도 급하던 차에 반지하 투룸에 들어선 순간
현관문 밖으로 나오는 따스한 온기와 보이는 화사한 인테리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여기인가?'라는 안도감
'이제 겨울인데 언제까지 구하려고 그래?'
'이제 그만 하고 여기로 하자'라는 속삭임이 들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우리 가족 '구해줘! 홈즈' CUT! NG!
반지하는 곳의 실체를 모르고
그래도 '월세가 40 후반인데 사람이 못 살 곳은 아니겠지'라는 자기 합리화
마음에 안 들면 중간에 옮길 수도 있을 거란 착각에 결국 다음날 계약을 하게 됐다.
이전 세입자가 장롱, 세탁기, 주방 렌지대, 가스레인지를 싼 가격에 넘겨주었고
집주인이 간섭도 별로 없고 점잖은 미대 교수님이라는 점
버스로 10분이면 지하철에 도착하는 점에 만족하게 된 것도 몇 달이었다.
아니 사실 며칠이었다.
먼저, 환기.
주방 레인지후드의 배관의 끝은 베란다 밖 외부가 아니고 베란다 내부에 위치해 있었다.
안 그래도 자연환기가 어려운데
중간에 뚝 끊긴 담배 이어 붙잡고 피는 기분이랄까.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습기.
바닥난방을 가동하는 겨울과 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여름이 문제였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아내와 아이는 에어컨을 켜고 자는 것을 너무 춥다고 몹시 싫어했다.
안 그래도 습한 데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바람으로 창문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는 것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집을 비우는 낮시간을 지나 저녁에 퇴근해서 와보면 안방 바닥에 습기가 고여 있었다.
아래에서 솟구친 것은 아니고 지금 내 추측이 건데 사막에서 큰 구멍을 파고 그 위에 비닐을 덮고,
다시 그 위에 큰 나뭇잎을 얹혀 놓고 하룻밤이 지나면 비닐에 물이 고이는 현상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이건 뭐 정글의 법칙 체험.
난 그때부터 다짐했다.
집부터 사야겠다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부터 가야겠다고.
21번째 집을 찾아.
이 정도면 역마살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