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인사발령에 내 이름이 있었다

성과는 조용했고, 생색은 크고, 감정은 작지 않았다

by 왕감자감자


회사에는 공식적인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팀당 최대 한 명.”
그게 정기 승진의 암묵적 룰이었다.

최대 한 명이란 뜻은 성과가 없는 팀은

승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기대는 없었다.


영업직군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연차에 맞춰 자동처럼 승진했다.


그에 반해 내근직,

특히 SCM 같은 서포트 직무는
성과가 명확하게 보여도
그저 다음 기회를 기약하라는 말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내 맞사수만해도 대리를 달기까지 두 번의 낙방을 맞보고

세 번 만에 승진을 한 전례가 있었다.





아무도 몰랐던 그 사건의 무게


통관 이슈가 한창이던 지난 4개월.
항구에 묶인 수십 개의 카턴

하루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보관료.
영업팀의 불만, 거래처의 독촉,
그리고 세관과의 끝없는 줄다리기.


나는 그 모든 긴장의 중간에서
“공문 주세요. 3천 개 전부 인증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그 통화 하나로
4개월간 막혀 있던 수입이 풀렸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의록에도, 보고서에도
내 이름은 그저 한 줄이었다.


[통관 이슈 해결 – 왕감자]
※ 관련 서류 및 대응 상세 내역 별첨 참조






그리고 9월 1일.


그날도 평범하게 출근했다.
기대하지 않았다.
팀 전체 분위기도 조용했다.


그날따라 폭풍전야를 앞둔 것처럼

소란스러운 사무실도 고요했다.

오전 10시

사내 전사 공통 알림 게시판에

정기 인사발령문이 올라왔다.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내 이름을 봤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몇 번이고 공지를 다시 열어봤다.
눈을 비벼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많은 축하가 쏟아졌다.

“감자님, 진짜 축하해요!”
“올라갈 줄 알았어요.”


그날 나는

기쁜 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진짜 기뻤다.

승진했다.
사원에서, 대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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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색은 따로였다.


며칠 뒤, 팀장이 말을 꺼냈다.

“왕감자대리님, 이번에 올라간 거,
원래 승진 포인트 미달인데

내가 윗선에 엄청 밀었어요.

내가 만든 자리니깐 열심히 해요~"

웃으면서 던진 말이었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뻣뻣해졌다.


추천도 중요하지만,
추천받을 자격은 ‘성과’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그 순간,
승진은 축하의 말보다
한 마디의 생색에 눌려버렸다.


팀장이 추천한 것도 맞지만,
나를 비롯해 성과를 보인 직원들이

팀당 1명이라는 암묵적인 룰을 깨고

정당한 보상을 받고 승진하는 건

당연한 절차여야 하는데,
그 당연한 것을 마치 호의처럼 생색내는

회사와 그리고 팀장에게
조금은 서운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승진은,
누구 덕분이 아니라
그동안의 내가 쌓아온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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