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49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사십 구 번째
"어라... 글 써야 돼요!!" 10시 반 경 오늘도 지각하기 일보 직전이다. 후다닥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집으로 귀가해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바쁜 것도 있지만 재미난 일도 여럿 생겨서 멤버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야물딱(?)스럽게 앉아있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무 말 대잔치를 누군가와 속 시원하게 할 수 있는 허심탄회한 시간이 있어 감사함을 느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이런 드립들의 원천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가 농담을 주고받는 데 그 근원을 살펴보자니, 몇몇 멤버들은 타율이 낮은 나의 드립에 크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티키타카를 잘 받아주기도 한다. 유쾌한 것은 무거운 삶을 한 껏 가볍게 하는 강장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겐 삶의 원동력이다.
이런 드립이라던지 혹은 어떤 생각의 발상은 단순히 인풋을 한다고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무엇이든 그것만의 댓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어지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순히 농담뿐만 아니라 어떤 기획이라던지 글을 쓰는 나만의 영감이라는 건 개인적으로 융통성이나 어느 정도의 촐싹임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는 누군가는 되게 가볍다고 무시할 지 모르겠지만, 능청맞거나 융통적이려면 상당한 마음의 여유를 할애하기도 해야 하며 남들 앞에 보이기 전에 앞서 생각보다 고뇌의 시간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평소에 웃기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들을 보노라면 어떤 희대의 드립이나 혹은 가시적인 창작물은 그냥 얻어지는 건, 당근이지만 전혀 아니다.
그 무수한 원인 중에 하나를 꼽아보자면 유연한 마음이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예민하기에 혹은 세심하기에 유연할 줄 안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이냐면 분위기에 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혹은 누군가의 말의 억양이나 뉘앙스 혹은 단어의 느낌에서 오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에 그것을 캐치해 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에 유머는 삶의 활력소였다. 한 때는 울면서 보기도 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눈물 나게 웃기는 경우가 있어 그런 콘텐츠를 찾아보면서 정말 기발한 발상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 썰렁함은 감내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타율이 낮다는 것은 반농담 반진실 이기도 한데 어쩔 땐 나는 굉장히 촐싹이다가도 어쩔 때는 너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드립을 치기 전에 분위기라는 것을 어느 정도(물론 나만의 잣대이겠지만) 파악하는 것 같다.
가끔 내 글에서도 항상 언급하지만 "맞아본 사람이 잘한다고" 어색함을 많이 경험해 보고 혹은 창작의 발상에서 고뇌를 많이 겪어본 사람이 그만큼 더욱 성장한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주는 것은 나도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장단 맞춰주기가 당연히 어렵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유쾌함을 찾아내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것만큼 만족스러운 일상은 또 없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