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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Dec 11. 2024

스위스 브랜딩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8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팔십 일번째



가끔 영화에서 검은 돈의 비밀유지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들이 등장한다. 도덕적인 혹은 법적인 것을 떠나서 실제로 고객에 대한 철저한 비밀유지가 스위스 은행들이 사랑 받았던 이유였으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자금 출처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자 비밀유지에 금이 가게 되었고 결국 다른 국가들의 은행으로 옮겨가면서 이러한 이미지는 조금 희박해졌다(신뢰에 대한 딜레마가 문득 떠오른다).



그런데 스위스 은행에 앞서 신뢰의 스위스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그들이 용병업에서 전국가적으로 브랜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있다. 중세사나 게임에서 스위스 용병들을 마주쳐 봤을 것이다. 당시 봉건사회에서 귀족들, 대표적으로 교황을 끝까지 목숨을 바쳐서 지켜냈던 스위스 용병들은 신뢰를 목숨보다 중요시 했다.


사코디 로마는 오늘날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를 대표할 만한 사건이다. 다소 복잡하긴 한데 유럽 패권경쟁에서 교황이 프랑스와 손을 잡고 신성로마제국과 싸우게 되었으나 이내 밀리게 되는 시점에 신성로마제국군의 지휘관이였던 샤를 3세가 전투중 사망하자 제국군이 폭주하면서 로마 전역을 약탈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말한다. 그때의 참상은 남녀노소 할 거없이 강간과 약탈,대학살의 현장이였다.



이때 당시 교황군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스위스 근위대 42명이 자신들이 전멸할 각오로 끝까지 교황 클레멘스 7세를 구하게 되고 사태 수습후에 교황청으로부터 엄청난 신임을 받게되면서 영구적으로 스위스 출신의 용병으로 된 근위대를 계약하게 된다. 용병이라하면 고용주와의 계약도 물론 중요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돈이고 뭐고 소용이 없었기에 쉽게 붕괴되는 경우가 있었다(이러한 점에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용병들을 비판한다).


스위스 출신의 용병들이 이런 전적인 신임을 받았던 이유는 스위스라는 환경자체에 기인한 바도 있다. 지금의 스위스도 산골짜기로 뒤덮여 있는 알프스를 떠오르듯 그때 당시에도 산악국가인 만큼 공동체의 경쟁력은 오로지 용병업에 종사함으로써 생계를 이어나갔다. 만약 출정한 용병들이 계약관계를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이는 스위스 공동체까지 피해를 주는 행위였기 때문에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목숨을 바쳤던 점도 있다. 


아무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결국 용병업에서 비롯된 굳건한 신뢰성이(중립국의 위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후손 대대로 은행업까지의 브랜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였지 않나 싶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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