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8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8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8화 / 2장 (우연인가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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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맞이한 네이즈는 얼려진 동토는 안중에도 없이 쾌속 행진을 명했다. 염동설한에 기상하기도 힘들었던 사람들은 빵인지 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급히 떼우고는 동굴에서 나왔다. 또 나온지 얼마 안되서 이불로 썼던 모든 천들을 회수하고 자리를 정리한 채, 다시 말의 고삐를 부여잡았다. 사람보다 더 아파보이는 외형을 가진 마차는 간신히 힘을 내며 바퀴를 굴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 밤의 진눈깨비와 거센 바람은 잦아들어 평소와 다름없는 겨울이었다. 71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인 로이딘은 걱정과 궁금증을 가진 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기를 반복하다 저 멀리, 다 쓰러져가는 집들과 무너져내린 창고와 외벽이고 내벽이고 할 거없이 비어 있는 건물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순례자의 쉼터 마을의 폐허에 도달한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마을을 보면서 처음 맞이하는 사람들은 저 곳이 어디였는지 속닥거리고 있었다. 로이딘의 귀 너머로 누군가가 "마을을 다시 복구시키려 우리들을 데려온 게 아니냐"며 옆 사람에게 묻고 있었다. 잡담을 나누는 군중을 무시하며 네이즈는 선두에서 마을이 위치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땔감으로 쓸 혹은 값어치가 있어보이는 모든 재료가 건물에서 뜯겨져 나갔고 간신히 몇 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떠 받들고 있었다. 도둑들이나 마적들 혹은 짐승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곳에 짐을 풀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네이즈가 언덕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사람들도 덩달아 건물을 우회하며 돌아서 내려갔다. 로이딘의 시선이 언덕으로 향하며 흉물이 된 폐허에 두었다가 이제는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분지가 드러났다. 그리고 크리네스의 만신전이 보였다.


앞서 도착한 아보의 사제들이 누구도 알지 못하게끔 하려는 모양인지 신전 입구 안쪽 가까이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말 8마리가 묶여있었다. 그들을 보호할 병사나 수행원은 없었다. 네이즈가 코 앞인 도착지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호위대장도 함께 뒤 따라 말을 몰았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앞에 있는 부대장의 인솔하에 네이즈 꼬리를 붙잡기 위해 살짝 경보로 걷기 시작했다. 분지로 내려오는 71명의 일행을 본 8명의 사제들은 나란히 선 채 그들을 기다렸다. 로이딘은 저 멀리 희귀한 색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았다. 네이즈처럼 자주색은 아니였지만 그들은 초록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8명의 사제중 대표로 가장 고령인 데센이라는 사람이 말에서 내린 네이즈와 악수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눈동자는 생기가 있었으며 체구는 다른 이들보다 작았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땅을 짚는 그는 네이즈 너머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머지 7명의 사제들은 소꿉장난이라도 한 모양인지 얼굴과 옷, 손과 팔에 먼지나 흙이 묻혀져 있었고, 무릎과 허벅지쪽에는 젖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서로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좀 나눕시다"

로이딘을 포함한 사람들이 도착할 때쯤 그들은 만신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만신전 입구 앞 공터에 사람들이 도착했다. 7명의 사제들이 호위대장과 부대장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사람들이 여기 머물게 끔 작업을 도와주었다. 네이즈와 데센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밖에선 분주하게 사람들 모두가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만신전 입구 공터는 분지여서 그런지 언덕에서 내려올때까지 거센 바람을 얼굴로 맞아야 했지만 지금은 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호위대장이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모닥불에 불을 붙이고 사람들이 머물 자리를 완성한 후에 확인을 해주려는 모양인지 외쳤다.

"이틀간 여기서 계약된 바를 이행하게 될 것이오"


호위병들도 긴장의 끈을 놓치 않다가 마침내 정주할 곳에 도착하자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는 지 땅이든 돌이든 어디든 앉았다. 아니면 등을 마차에 기댄 채 할버드를 쥐고 있었다. 반면 초록색 옷을 입은 사제들을 보니 우중중한 사람들과 색감이 대비되어 보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들 모양새가 마치 이 황무지에 살아남은 여름 철의 생생한 풀들 같았다. 사람들은 잡담을 나누고 시끄러웠지만 호위병이나 사제들은 말리지 않았다. 마치 곧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보상이라도 주는 것처럼.


로이딘은 계속 만신전의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도착한 마을과 신전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는 지금 당장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데센이 살짝 밖으로 모습을 보이더니 호위대장을 손짓하며 불렀다.

호위대장이 공터를 향해 뒤 돌아 한번 살핀 채 데센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로이딘의 시선은 계속 머물렀고 그들이 들어가자 자연스레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루네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루네도 로이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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